“어딜 가도 왜 이렇게 다 똑같은 거지.” 영화 속, 에디는 말한다. 그렇다. 뉴욕이건, 클리블랜드건, 플로리다건 그들에게는 다 똑같다. 뉴욕의 낡은 아파트나 클리블랜드의 눈 덮인 벌판이나 플로리다의 바람 부는 바닷가 모두 황량하긴 마찬가지다. 천국이라 알려진 아메리카 그러나 가난한 청춘에게는 그저 외롭고 고독한 땅.
짐 자무시의 대표작, 이제는 미국 인디영화의 고전이 된 <천국보다 낯선>은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쓸쓸한 유랑기이다. 한 여자가 헝가리를 떠나 미국에 온다. 뉴욕에서 두 남자를 만난다. 그녀가 떠난다. 이번에는 두 남자가 그 여자를 만나러 클리블랜드에 간다. 한 여자와 두 남자는 재회한다. 이들 셋은 함께 플로리다로 떠난다. 결국 이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두 남자가 도박이라는 우연의 게임에 돈을 걸듯, 여자가 우연하게 거액의 돈을 쥐게 되듯, 그들은 그렇게 매우 우연적으로 이별한다. 그런데 영화가 여기에 “신세계”, “일년 뒤”, “천국”이라는 제목을 붙이니 이들의 만남과 헤어짐이 슬퍼진다(이중 “신세계”는 1982년에 단편으로 먼저 만들어졌고 이후 두 단락이 덧붙여졌다). 인물들은 “신세계”는 신세계가 아니고, 일년 뒤에도 달라진 것은 없으며, “천국”은 천국이 아님을 깨달았거나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이들의 여정을 이끄는 우연의 순간들은 마치 필연 같다. 이 황량한 땅에서는 오직 시간만이 흐른다.
짐 자무시의 초기작에 속하는 <천국보다 낯선>에는 이후 그의 영화적 세계를 지배할 길, 떠남, 어떤 꿈, 외롭고도 낯선 절제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카메라는 결코 움직이는 법이 없고 정적인 공간 속 인물들은 말을 하지만 침묵하는 것만 같다. 그들은 서로를 기다리고 또 무언가를 기다린다. 그러나 어긋난다. 그들은 머무르지 못한다. 그들은 그 어디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로 떠다닌다. 완성될 수 없는 여정과 완성될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자무시적 사유는 아마 이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흑백 화면 사이의 암흑 그리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의 토막들 혹은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 반복되는 무료한 삶. 약 20년 전, 자무시가 꿈꿨던 이 세계에서는 여전히 낯설고 메마른 바람이 불어와 여전히 쓸쓸함을 안겨준다. 윌리 역을 맡은 존 루리의 매력적인 배경음악은 짐 자무시의 여느 영화 속 멜로디처럼 프레임 안의 세계에 흡수되면서도 자신만의 세상을 속삭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