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 온 지 3일 됐어요.” 최지우를 한국에서 본 건 꽤 오랜만이었다. 그녀는 지난 4개월간 <TBS> 드라마 <윤무곡-론도>의 촬영을 위해 일본에 가 있었다. 2004년 일본에서 히트한 드라마 <겨울연가> 덕분이다. 슬픈 사랑에 눈물 흘리며 아름답게 미소짓는 극중 인물 유진은 일본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했고, 그녀는 어느새 그들의 ‘지우히메’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녀의 이미지는 다소 심심했던 게 사실이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정서는 유진의 연장선 같았고, <피아노 치는 대통령>의 교사 역할도 그저 그랬다. 이제 그녀의 연기는 재미없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2006년 4월, 또 다른 멜로영화 <연리지>가 찾아왔다. 죽음을 앞둔 시한부 인생의 사랑 이야기다. ‘또 눈물멜로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던 순간, 그녀의 항의가 들려왔다.
“이번 영화는 눈물샘만 자극하는 최루성 멜로가 아니에요. 혜원은 매우 엉뚱한 부분도 있고, 닭살스럽기도 하죠. 또 남자에게 매달리기보다는 자신이 주도해가는 강인한 캐릭터기도 하고요.” 사실 돌이켜보면 그녀가 항상 순백의 멜로 안에만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영화 주연 데뷔작인 <올가미>에서 아들에 집착하는 시어머니에 맞선 며느리로 출연했고, <누구나 비밀은 있다>에서는 학구파지만 연애에는 호기심 많은 여자 선영을 연기했다. “사실 저는 영화 속에서 꽤 다양한 역할을 했어요. 공포영화 <올가미>, 분량은 적었지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리고 <누구나 비밀은 있다>까지. 그런데 <겨울연가>의 이미지가 컸나봐요. 사람들은 다 제가 멜로만 하는 줄 알아요” 이번 <연리지>에서도 그녀는 결코 눈물로만 모든 걸 얘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당당하고 씩씩하다. “솔직히 <연리지> 같은 사랑, 싫잖아요. 물론 영화니까 그런 얘기가 가능하지만, 저는 너무 슬픈 사랑은 싫어요. 그래서 슬픈 연기를 하면서도, 사랑을 할 때는 알콩달콩하고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1995년 ‘이자벨 아자니 닮은꼴 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린 최지우는 이제 ‘누군가의 닮은꼴’이란 이름표를 떼어버렸다. 2006년 2월 강원도의 한 리조트에서는 <겨울연가>의 최지우, 배용준 선발대회를 가졌고, 그녀는 이제 ‘닮고 싶은 누군가’가 되었다. “무척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을 줄은 그 누구도 몰랐던 일이잖아요. 그래서 부담이 되기도 하죠.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까, 그런 걸 생각하게 돼요.” 멜로보다 로맨틱코미디를 좋아하고, 성격도 낙천적이라 말하는 그녀는 좀더 밝은 톤으로 말을 이어갔다. “연기자가 연기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죠. 하지만 30대가 되었다고, 후배 배우들이 치고 올라온다고 느끼는 부담감은 없어요. 저는 그냥 제 것 하면 되거든요. 내 것이 아니다 싶으면 포기도 빨리 해요. 배우가 이것저것 다 잘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분도 계시지만, 솔직히 저는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고, 남들이 그걸 좋아해준다면 그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녀에게도 욕심은 있다. “파란만장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이나 <콜드 마운틴>의 니콜 키드먼처럼. 옛날 영화도 좋아하고, 시대극은 꼭 해보고 싶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스케일이 크면서 사건도 많은 영화들을 해보고 싶어요. 무협영화요? 액션만 빼면 좋아요. 액션은 자신없거든요.” (웃음) 그러나 3월26일 일본에서 종영된 드라마 <윤무곡-론도>에서 그녀는 단 한번이었지만 총을 잡았다. “처음으로 총을 만져본 건데 재밌더라고요.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녀가 액션 연기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