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1만 남다른 관객 100만 안 부러워라
2006-04-07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일본의 시부야나 미국 뉴욕의 대학가처럼 한 블럭 건너 작은 영화관을 만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서울 종로구 일대는 작은 영화관들의 거리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씨네큐브와 하이퍼텍나다 사이로 필름포럼과 스폰지하우스, 그리고 중구 명동에 씨큐엔명동이 둥지를 틀었다. 이들 영화관들은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CGV 인디영화관과 더불어 서로 공조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색깔의 작품으로 경쟁하기도 한다.

스폰지하우스 _ 10만명 ‘대박’신화의 눈앞에

올 1월 씨네코아극장에 개관한 스폰지하우스는 지금까지 세편의 영화만 개봉했을 뿐이지만 ‘스폰지’라는 이름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관객들에게 꽤나 친숙한 이름이다. 2002년부터 빔 벤더스, 기타노 다케시, 페드로 알모도바르, 왕자웨이 등 거장 감독들의 작품이 스폰지를 통해 수입·배급돼왔다. 2004년 무명 감독이었던 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를 발굴·수입해 4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잇신 감독의 차기작 <메종 드 히미코>로 올해 만루홈런을 쳤다.

예술영화관이 아니라 ‘독립영화관’임을 표방하는 스폰지하우스의 상영작들은 ‘정통’ 예술영화라기 보다 젊은 감각의 트랜드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주류 영화에서 한발짝 비켜나있는 영화들이다. 같은 예술영화로 분류되는 작품이라도 무겁고 까다로운 앙겔로풀로스나 타르코프스키는 ‘스폰지과’가 아니라는 게 조성규 대표의 설명이다. 주 관객층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직장인 독신 여성이다. 보통 한편을 장기 상영하는 단관들과 달리 많은 영화를 순환·교차 상영하는 게 스폰지의 배급·상영 방식이다. 남다른 영화를 찾는 관객들은 일반 관객보다 극장을 훨씬 자주 찾는데다 휴일에는 하루에도 두세편씩 영화를 보기 때문에 몰아보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스폰지의 전략이다. 압구정동에 80석 규모의 독립영화관을 인수해 차린 스폰지압구정도 조만간 개관을 앞두고 있다.

■ 올해 주요 상영작 = 90년대 청춘의 아이콘의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날들을 그린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가 27일 개봉한다. 이 영화와 축구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이란의 소녀들을 그린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오프 사이드>(자파르 파니히)와 베를린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미셸 공드리의 <수면의 과학>이 스폰지가 스폰지하우스를 중심으로 올 상반기 소규모 개봉을 준비하는 대표적 영화들이다. 또한 스폰지는 20일 개봉하는 <콘스탄트 가드너>를 비롯해 브래드 피트 주연, <21그램>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감독한 대작 서사극 <바벨> 등 100개관 이상 규모의 개봉영화들도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씨큐엔명동 _ 최근 일본영화 실시간 소개

올 1월 명동에 개관한 씨큐엔명동은 재일동포인 이봉우씨가 일본에서 운영하는 극장 씨큐엔의 한국법인이다. 5개관 중 1개가 일본영화전용관으로 운영되며 그 첫 작품이 지금까지 꾸준히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는 <박치기>다. 이 대표가 운영하는 영화제작사인 씨네콰논에서 제작한 <박치기>는 지난해 한국 배급 파트너를 구했지만 유명 감독이나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직접 극장을 차려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씨큐엔명동을 운영하는 이애숙 부사장은 이 극장의 목표를 “일본의 최근 영화를 시간차 없이 한국에서 개봉하는 것”과 “컨텐츠뿐 아니라 상영과 관람도 다른 스타일의 문화를 만들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3개관에서 개봉했던 영화도 한국에서는 60~70개씩 상영관을 잡고 개봉하려 하는 한국 극장가의 ‘무조건’ 와이드 릴리즈 문화에서 벗어나 소규모 장기상영의 방식을 넓히는 데 일조하겠다는 말이다.

또 다른 극장과 달리 넓은 로비와 다리뻗고 쉴 수 있는 큰 소파 등을 준비해 극장을 카페처럼 차분한 휴식처로 만들겠다는 것도 차별화된 전략이다. 한편만 개봉한 상태에서 관객성향을 데이터화할 수는 없지만 <박치기>의 경우 재일동포라는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영화 마니아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일반관객들도 꽤 많다는 게 씨큐엔측의 설명이다.

■ 올해 주요 상영작 = 씨큐엔명동은 13일 개봉하는 배두나 주연의 학원드라마 <린다린다린다>를 개봉하며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한 오다기리 조가 주연한 <흔들리다>를 올 여름 일본 개봉과 맞춰 한국에서도 상영할 예정이다. 또 <69>의 이상일 감독, 아오이 유우 주연의 <훌라 걸>도 가을쯤 일본과 동시 개봉한다. 두 영화는 씨네콰논이 제작했다. 또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낳았던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안녕, 평양>도 씨큐엔명동을 통해 한국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필름포럼 _ 예술영화 최전방으로 관객을 안내

지난해 5월 구 허리우드 극장에 2개관을 연 필름포럼이 지난해 직접 수입해서 상영한 영화는 두편.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의 <불안>과 샹탈 애커만의 <갇힌 여인>이다. 영화 좀 본다고 자부하는 관객들에게도 그리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올해의 라인업에는 조앙 세자르 몬테이로와 라울 루이즈의 연출작이 올라와 있다. 이 네명의 감독이름을 보면 필름포럼의 지향점이 드러난다. “한국에서 알려지지 않거나 알려졌지만 보여지지 않은 명화”들을 한국 관객에게 소개한다는 것이 필름포럼의 목표다.

그러나 평균 관객수를 3000~5000명으로 잡았던 개관 초기에 비하면 성과는 아직 크지 않다. 두 영화는 1500명 정도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그러나 한국에 전무하다시피했던 인지도의 감독으로 이 정도의 성과는 희망적이라는 게 극장측의 진단이다. 대신 필름포럼은 지난해 디브이디 시장으로 직행할 뻔했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개봉해 1만5천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정통 예술영화 뿐 아니라 이 영화나 올해 개봉을 앞둔 일본영화 <언러브드>처럼 대중성과 영화적 깊이를 겸한 영화도 두루 개봉하겠다는 게 필름포럼의 계획이다. 같은 회사인 이모션픽처스에서 최근 일본 엔에치케이와 공동투자로 완성한 김영남 감독의 연출작 <내 청춘에 고함>을 비롯해 젊은 감독을 발굴, 한국 영화 제작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 올해 주요 상영작 = 필름포럼의 올해 최고 기대작은 직접 제작한 <내 청춘에 고함>이다. 김태우, 김혜나가 주연했으며 중간급 규모의 배급으로 전국 동시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밖에 2004년 광주국제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나카무라 토오루 주연의 <언러브드>가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작품으로 2005년의 <은하수…> 못지않게 흥행 효자 노릇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호앙 세자르 몬테이로의 <오고 가며>,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아브라함 계곡>을 준비 중이다.


CGV 인디영화관 _ 일반상영관 관객 선택폭 1cm 넓혀

2004년 가을 서울과 부산에 3개관을 연 CGV 인디영화관의 성적은 독립영화관 가운데 가장 저조하다. 복합상영관을 주로 찾는 관객들의 특성상 이곳까지 북적이는 발길이 다가오지 않는 탓이다. 최악의 경우 관객이 한명도 없어 영사기를 놀려야 했던 적도 드물지 않다. 그럼에도 4월부터 CGV인천에 한 관을 늘렸고 기존 3개관은 올해부터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관 네트워크인 아트플러스에 가입해 영진위의 지원을 받게 된 데 더해, 스스로도 홍보 예산을 늘렸다. 수지맞추기 힘든 장사지만 인디영화관이 CGV가 발표한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임을 감안하면 납득 못할 일이 아니다.

직접 작품을 발굴 수입하는 대신 부산, 전주 등의 영화제와 주로 연계해 상영작을 고르며 독립영화 가운데서도 외국작품보다 흥행의 힘이 약한 한국영화를 상대적으로 많이 상영한다. <프락치>는 단독개봉했으며 <시티즌 독>등의 아시아 영화 6편을 씨제이엔터테인먼트와 공동배급했다.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영화나 아시아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지며 아직 관객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일반 상영관에 왔다가 인디영화관에 ‘도전’하는 관객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는 게 CGV 인디영화관 운영팀 강세아씨의 말이다.

■ 올해 주요 상영작 = CGV 인디영화관은 지난해 부산영화제를 비롯해 선댄스, 베를린에서 호평받은 조창호 감독의 <피터팬의 공식>을 13일, 에릭 쿠의 <내 곁에 있어줘>를 27일 개봉하며 5월에는 강혜정 주연,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5c<보이지 않는 물결>도 5월 중 개봉 예정이다. 또 올해부터는 전주국제영화제와 손을 잡고 출품작 가운데 한국 장편영화 1~2편을 골라 후반작업에서 개봉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시작해 새로운 한국영화 발굴과 소개에 좀 더 공을 들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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