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간잡지 <베니티 페어> 3월호 표지에 두 여배우의 누드 사진이 실렸다. (본 사람들은 알 텐데) 모델은 키라 나이틀리와 스칼렛 요한슨이다. 키라 나이틀리는 상체를 세우고 앉아 있고, 스칼렛 요한슨은 길고 부드럽게 배를 깔고 누워 있다. 키라 나이틀리의 자태도 아찔하지만 우리를 정말 숨막히게 하는 것은 스칼렛 요한슨의 곡선이다. 새하얗고 풍만한 그녀의 전신은 르네상스 시대에나 존재한다고 믿어졌던 고상하고 부드러운 여인의 그것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베니티 페어>는 정확했다. <베니티 페어>는 이 시대 다른 여배우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스칼렛 요한슨만의 특징을 사진 한장으로 이야기했다.
1984년생 스칼렛 요한슨은 1985년생 키라 나이틀리와 함께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20대 초반의 스타들이다. 아역배우 출신으로서 스칼렛 요한슨은 <호스 위스퍼러>(1998)에서 상처와 닫힌 마음을 가진 소녀 연기로 주목받았고, <판타스틱 소녀백서>(2001)에서 역시 또래보다 현실적이어서 외롭고 조숙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에서는 무심한 남편과 마음의 거리를 둔 외로운 20대 주부였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3)에서는 자기가 주인으로 섬기는 화가의 깊은 예술적 세계에 동참하는 어린 하녀로 등장했다. 키라 나이틀리가 <슈팅 라이크 베컴>(2002)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2003) <오만과 편견>(2005)을 이어가며 얼굴에 검댕 좀 묻히고 육체노동을 괘념치 않는 천덕꾸러기 왈가닥 소녀의 이미지를 가졌다면, 대체로 조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요한슨은 깨끗하고 고상하며 비현실적이다. 이 신비로운 이미지에 공헌한 요한슨의 육체적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눈빛. 상대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때에도 수많은 의미로 읽히는 사시 섞인 눈동자가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고 풍만한 몸이다. 너무 탐스러워서 꽉 쥐어보고 싶은 금단의 열매. 요한슨은 소유욕과 관음욕의 대상으로 제격이다.
우디 앨런의 최신작 <매치포인트>(2005)는 요한슨의 이런 매력을 100% 반영한 드라마다. <매치포인트>의 주인공 크리스(조너선 라이 메이어스)는 신비스럽고도 탐스러운 미국인 여배우 노라(스칼렛 요한슨)를 소유하면서부터 파멸의 길로 빠진다. 금단의 열매는 어디까지나 ’금단’이다. 여신은 땅에 있어도 결코 인간과 섞일 수 없기 때문에 신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끊임없이 상대를 유혹하는 눈빛과 육체를 가졌지만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외로운 비너스다. 할리우드의 40~50년대를 장식했던 로렌 바콜을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외모와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들이 구현했던 고대 여신의 육체는 앞으로도 많은 감독들에게 새로운 이야기의 도구로 활용될 것이 분명하다. 귀엽거나 차가운 매력을 무기 삼았던 20세기 말의 은막 스타들-줄리아 로버츠, 멕 라이언, 카메론 디아즈, 기네스 팰트로, 니콜 키드먼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은 21세기의 고독한 여신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