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뉴욕] 비극적인 참사, ‘영화로 보기에는 너무 일러’
2006-04-13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9·11 테러 다룬 <유나이티드 93> 트레일러, 뉴욕의 한 극장서 관객의 항의로 상영 중지
<유나이티드 93>

몇주 전 <인사이드 맨>을 보러 타임스스퀘어의 한 극장에 갔다. 영화 시작 전 예고편이 연달아 나왔다. 그중 하나가 <유나이티드 93>이었는데 보이스오버나 낯익은 배우도 없이 화창한 아침에 항공기 탑승객들의 분주한 모습으로 시작된다. 1분이 지난 뒤에야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항공기가 추락하는 뉴스장면이 삽입되면서 이 영화가 9·11 때 테러리스트를 막기 위해 승무원과 탑승객들이 싸우다 펜실베이니아 평지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93’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극장 여기저기서 ‘너무 일러’(too soon)라는 말이 나왔다.

할리우드영화로는 처음으로 9·11을 다룬 이 작품은 4월28일 개봉예정이라 제작사 유니버설픽처스가 전국 극장에서 트레일러를 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는 9·11의 기억을 가진 뉴요커들에게 이 영화가 반가울 수는 없던 것. 맨해튼의 한 극장은 관객의 잇단 항의로 트레일러 상영을 중지했고, 이 내용을 다룬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기사와 관련 속보는 뉴욕은 물론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다.

이 작품의 감독은 폴 그린그래스로 <블러디 선데이>를 통해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의 분쟁으로 발생된 비극 ‘피의 일요일’을 사실적으로 그린 장본인. <뉴스위크>에 따르면 <유나이티드 93> 역시 유가족들의 100%의 영화제작 동의를 얻은 뒤에야 작업에 들어갔다. 유가족들의 전적인 지원을 받은 이 작품에 대해 당시 79살 어머니를 잃은 캐롤 오해레는 “사망한 탑승객과 승무원들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이야기를 반드시 들려주어야만 한다”고 했다.

하지만 9·11을 미국 전체의 비극으로 보는 관객은 이 영화는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돈을 벌기 위해 국민적인 참사를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5년이 채 되기도 전에 9·11을 다룬 할리우드영화를 개봉하는 것은 시기 상조라는 비난을 받고 있고, 그때의 ‘참사’를 9달러50센트의 입장료를 내고 다시 경험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는 의견도 분분하다. 반면 유가족들은 “9·11은 우리의 공항과 항구가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참사다. 하지만 아직도 미국의 공항은 안전하지 못하다. 이 영화는 이런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나이티드 93>은 9·11 이후 침체됐던 로어 맨해튼의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로버트 드 니로를 주축으로 시작된 ‘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4월25일∼5월7일)에서 개막작으로 처음 상영될 예정이다. 유니버설픽처스는 개봉주말 수익의 10%를 ‘플라이트 93 메모리얼 펀드’에 기부할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공식 영화 웹사이트에 기부를 권장하는 코너를 따로 마련해 www.honorflight93.org와 링크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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