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차, 돈 차∼”(Don’t Cha Don’t Cha). 음악이 울려퍼지면 무대 위의 남자가 목을 길∼게 빼서 돌리기 시작한다. 고무처럼 쭉쭉 늘어나는 목도 경이롭지만, 시침 뚝 떼고 있는 듯 무표정한 얼굴이 폭소를 자아낸다. 휴대폰 SKY 광고에 등장한 이 엽기적인 몸동작은 ‘맷돌춤’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나이트클럽에 맷돌춤 타임이 생길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신드롬의 중심에는 맷돌춤 남자 박기웅이 있다. 순식간에 CF스타로 떠오른 박기웅은 현재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신인 중 한명이지만, 맷돌춤 외엔 알려진 바가 극히 적다. 올해로 연기 생활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그의 경력이라곤 뮤직 비디오와 광고 외에 드라마 한편과 영화 두편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데뷔작인 <괴담>이 일본영화임을 감안한다면, 박기웅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한국영화는 <싸움의 기술>이 유일하다. <싸움의 기술>의 전학생 재훈을 눈여겨본 사람이라도 그가 맷돌춤 남자와 동일 인물임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학교 짱 ‘빠코’와 맞붙는 재훈은 고독한 분위기의 악바리였고, 웃음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때문이다.
스스로를 ‘촌놈’이라 일컫는 박기웅은 고등학교 때까지 안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 진학 뒤 서울에 올라온 그는 친구 소개팅을 위해 놀러간 신촌에서 길거리 캐스팅됐다. 예쁘장한 외모 탓에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박기웅의 이력은 결코 평범치 않다. 중학교 때는 100m 달리기 도내 기록을 가진 육상 선수였고, 고등학교 때는 음악에 빠져 밴드 보컬을 했다. 미대생인 그는 한때 미술학원 강사를 했을 정도로 그림 솜씨가 좋다. 흥미를 자극하는 것에는 언제나 두려움없이 뛰어들곤 했던 박기웅에게 연기는 또 다른 도전의 대상이었다.
K2의 뮤직비디오 <사랑을 드려요>의 남자주인공으로 첫발을 내딛은 박기웅의 출발은 비교적 순탄했다. 하지만 신인들이 으레 겪게 마련인 고초들을 그도 겪었다. 드라마 첫 출연작인 <조선과학수사대별순검>이 조기 종영됐고, 이후 “알 만한” 드라마에 여러 번 캐스팅됐지만 갑작스레 튕겨나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싸움의 기술>의 시나리오를 받아든 것은 그 무렵이었다. “왠지 대사가 입에 잘 붙고, 내가 정말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바람이 간절했다는 그는 세 번의 오디션 끝에 캐스팅이 확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말 그대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싸움의 기술>의 재훈은 학교 짱 빠코에게 정면으로 맞설 만큼 자존심 강한 악바리지만, 결국 빠코 패거리에게 철저하게 부서지는 캐릭터다. 때문에 출연장면 대부분이 싸움인 것은 물론이고, 그중에서도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장면이 태반이다. 박기웅은 독종이 됐다. 카메라가 향하지 않는 순간만큼은 몸을 아낄 법도 한데, 박기웅은 빠코 역을 맡은 홍승진에게 카메라와 상관없이 발로 계속 자신을 걷어차라고 했다. “맞더라도 신 하나 제대로 뽑아내자”는 이유에서였다.
촬영을 마친 뒤 이틀 동안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앓았지만 “잘 나온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환하게 웃는 박기웅은 연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평소에 늘 오감을 열어두려 해요.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하나의 신이 될 수 있잖아요.” 일상의 모든 순간을 연습의 기회로 활용하는 그는 지독한 노력가다. 완벽한 몸치였던 그가 ‘맷돌춤 광고’에 캐스팅될 수 있었던 이유도 다르지 않다.“현장에서 감독님에게 여쭤봤어요. 왜 저를 뽑았나. 그랬더니 이러시더라고요. 춤은 진짜 못 추는데 제일 열심히 하더라고.”
차기작 <동갑내기 과외하기2>에서 박기웅은 생애 첫 주연을 맡았다. 재일동포 여학생과 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생으로 캐릭터 설정은 약간 바뀌었지만, 티격태격하던 동갑내기들이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는 예전과 동일하다. 전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선배들이 너무 잘해서 더 잘하긴 힘들 것 같아요.” 털털하게 이야기하는 박기웅은 흥행 성적보다 스스로 “퇴보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처음엔 그냥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1%도 그런 생각 안 해요.” 평생 좋아하는 연기를 하면서 착하게 사는 게 꿈이라는 박기웅에게 신인배우가 으레 내보일 법한 거창한 포부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냥 연기가 너무 재밌다”며 얼굴을 붉히는 그에게는 큰 걸음을 이제 막 내딛기 시작한 새내기의 흥분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