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할 일이란 어두운 방으로 가서 그곳에 폭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993년 호주에서 열린 회고전에서, 초현실주의적 방식에 대한, 아마도 처음은 아니었을 질문을 받고서 라울 루이즈(1941∼)는 남미의 한 작가가 했던 이야기를 인용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의 영화와 그 구축의 방식에 대한 가장 단순하면서도 적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영화 사상 대단히 창의적이게도, 혹은 아주 뻔뻔하게도, 하나의 세계에 그것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계를 구축하고 또 연결해냄으로써 매혹적인 몽상의 영화적 세계를 선사하는 시네아스트가 바로 루이즈인 것이다.
종종 ‘루이스 브뉘엘의 후계자’라고 불리고 혹자로부터는 ‘알랭 레네의 적자’라고도 이야기되는 라울 루이즈의 그 이상한 영화세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68년 정도의 일이다. 그해의 그는 이제 막 첫 장편영화를 만드는 네명의 칠레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완성된 영화 <세 마리의 슬픈 호랑이>로 칠레 ‘누에보 시네’(nuevo cine)의 일원들 가운데 처음으로 장편영화를 개봉시킨 감독이 되었다. 여기서 그는 칠레 중하층 계급의 실상을 다루면서도 리얼리즘이 아닌 방식, 예컨대 일반적인 경우와는 정반대로 카메라를 배치한다거나 시간을 모호하게 처리하는 등의 모던한 방식을 활용해 앞으로 펼쳐질 그의 세계에 대한 통로를 이미 마련해놨다. 이 칠레의 새로운 영화는 루이즈에게 로카르노영화제 그랑프리를 안겨주었지만 다가올 정치적 변동은 그의 ‘뉴 웨이브’ 시기를 단명케 했다. 1973년에 피노체트가 감행한 피의 쿠데타 이후 그는 유럽으로 망명의 길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칠레의 모든 기록>(1986)으로 잘 알려진 미겔 리틴 역시 동일한 행보에 몸을 실었다). 그러고보면 아옌데 정권 아래서 민주주의를 경험하던 시기에 우화적 방식으로 독재체제의 문제를 다룬 루이즈의 1971년작 <유형지>는 조국의 비참한 앞날을 예견한 영화로 읽힌다.
하지만 루이즈는 향수의 무게에 억눌려 지내는 무기력한 망명자는 아니었다. 주로 프랑스를 거점으로 하고서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프로젝트들 사이를 활발히 왕래하는 그의 걸음은 세계들 사이를 넘나드는 그의 영화 속 자유로운 행보를 연상케 한다. 사실 루이즈의 다산성이란 놀랄 만한 것이다. 그 자신은 10대 후반의 3, 4년 동안 100편에 달하는 희곡을 썼다고 했다(그 가운데 상당수는 나중에 영화로 이어질 기반이 되었다). 영화감독이 된 뒤로 그는 50살에 이르러 100편의 영화를 만들고 이어 칠레라는 나라가 만든 영화의 총수보다 많은 편수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실제로 그는 단편과 TV물 등을 합한다면 현재까지 그런 결심에 거의 근접하는 수의 영화를 정말이지 열심히 만들어냈다. 물론 이것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표준적인 방식이 없다는 근본주의적인 사고와, 걸작이든 졸작이든 똑같은 수고가 든다는 창작-노동의 개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그는 에이드리언 마틴, 이안 크리스티 등과 함께 영어권에서는 드물게 루이즈의 세계를 ‘탐사’하려는 힘겨운 노력을 기울이는 평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영국의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자신이 루이즈를 소홀히 다룬다고 로젠봄에게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산출된 루이즈의 질적·양적으로 방대한 필모그래피 자체가 영화적 실험에 대한 자본주의적 개념들을 제대로 모욕한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것이 루이즈의 세계를 아직까지도 그 명성에 비해 비평의 어둠쪽에 놓이게 만든 주요한 한 가지 요인이 되었음도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비평적 행위에 앞서 일단 물리적으로도 전면적인 접근을 불허하는 시네아스트인 것이다(따라서 다음에 이어질 논의도 어쩔 수 없이 루이즈의 세계에 대한 극히 부분적인 진입 및 관찰기임을 밝혀둔다).
온갖 사조가 뒤섞인 복잡한 미로
사실 질과 양에서 그 스펙트럼이 넓은 전작이 아니라 어떤 한 작품을 가지고 들여다봐도 루이즈는 손쉬운 정의를 벗어나버리는, 그래서 흥미로운 관찰의 대상임을 알아낼 수 있다. 예컨대 그는 세상 자체를 제멋대로 가지고 놀려(먹으려)고 하는 농담가인 것처럼 보이다가 금세 얼굴을 바꿔 진지하게 세계의 근본을 탐구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포획을 거부하는 그에게서 우선 그래도 비교적 확고한 얼굴을 한 가지 찾는다면 그건 환상의 세계를 축조하는 이미지의 시인의 그것일 것이다. 몽상가적 기질로 볼 때 어느 정도는 장 콕토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그 선조보다 때론 황홀하게 그리고 과격하게 비주얼의 흐름으로 우리의 주의를 이리저리 움직여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런 후예이다. 이를테면, <항해사의 세 왕관>(1983)이나 <해적들의 도시>(1984) 같은 영화들에서 다양한 시각적 트릭과 효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몽환적 이미지의 흐름은 그 누구에게라도 시야에 포착되는 요소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바로크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비주얼을 과시한다는 점에서 평자들은 종종 오슨 웰스에게서 루이즈의 준거대상을 찾곤 한다. 이럴 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루이즈가 알게 모르게 웰스의 영향권 아래 있는 것은 단지 비주얼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기 세계 속에 미로를 구축하고 거짓과 재현의 문제를 물었던 그 웰스도 루이즈는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루이즈는 일정한 방향이 없는 듯한 전개 경로를 가진 이야기를 통해 또 한 사람의 미로의 건축자가 되었다. 그렇듯 그는 통상적인 스토리텔링을 싫어하는 영화감독이다(이걸 그가 스토리텔링 자체를 싫어하는 영화감독으로 잘못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의 영화들은 오히려 그가 스토리텔링의 유희를 마음껏 즐기는 이라는 걸 증명해준다). 열정적으로 희곡 집필에 몰두하던 그 시절 루이즈는 아이오와대학에서 열린 유명 작가들의 워크숍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곳 교사들이 모든 드라마는 갈등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심한 반감을 가졌다. 그래서 또 다른 교사였던 커트 보네거트에게 조언을 구하러 갔다. 보네거트는 루이즈에게 아이오와를 떠날 것을 제안했고 루이즈는 그 제안을 즉각 받아들였다. 그처럼 루이즈는 꼭 의지를 가진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이야기를 빚어낸다는 생각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가 보기에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면 이야기는 좀더 흥미로운 예측 못할 일들, 인물들을 추동하는 ‘기적’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루이즈는 바로 이 신념에 따라 쓸데없는 도그마를 내던져버린 유연한 이야기를 매만져왔다.
인간의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무리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루이즈의 영화들에서 세계는 사실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서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그 가능한 세계는 단지 하나가 아니라 그것과 어느 정도의 격차를 두고 복수로 존재할 수 있다. 예컨대, <세 개의 삶과 하나의 죽음>(1996)에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연기하는 인물은 세개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시간을 잃어버린 남자, 인류학 교수이자 거지, 회사의 중역이자 집사인 인물로 탈바꿈한다. 루이즈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평행 우주’(parallel world)라 부를 수 있는 세계들을 여럿 구축해놓고 그것들을 넘나들면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제안한다. 무심코 이야기를 마구 펼쳐놓는 듯하면서도 은밀히 통제력을 발휘하는 루이즈의 태도는 통상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그 가능성, 차라리 무질서라고 부를 수 있는 상황을 어느덧 나름의 질서를 가진 하나의 체계로 바꿔내고 만다. 혼돈과 질서, 그것에 대한 불신과 믿음이 교환 가능함을 증명하는 그는 확실히 픽션과 세계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유능하고 심오한 탐구자가 맞다. 영화평론가 데이브 커의 표현을 빌려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그렇게 해서 루이즈는 홀로 일종의 (영화적) 혁명을 진행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영작 추천
<세 개의 삶과 하나의 죽음>
Trois vies et une seule mort, 1996년, 123분, 컬러
하나 이상의 정체성을 가진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데이비드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1997)와 비교되곤 했던 작품. 대체로 린치의 영화보다는 이야기의 ‘패턴’을 다루는 데 있어서 라울 루이즈의 영화가 좀더 세련되었고 원숙하다는 평을 들었다. 마스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마지막 두 번째에 해당하는 이 영화에서 라울 루이즈식의 ‘평행우주’들 사이를 넘나드는 인물로 나온다. 그러면서 그는 20년 만에 아내를 찾아오는 마테오, 인류학 교수였다가 거지가 되어 성공을 거두는 조르주, 가난한 커플한테 몰래 도움을 주는 산업가 뤽으로 바뀐다. 각 에피소드들을 흥미롭게 들려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유연하게 묶어낼 줄 아는 솜씨는 어째서 루이즈가 위대한 이야기꾼인지를 알게 해준다.
<되찾은 시간>
Le Temps retrouve, 1999년, 158분, 컬러
마르셀 푸르스트는 따지고 보면 대단히 영화적인 측면을 가진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스크린으로 옮겨내는 것은 오랫동안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그런 면에서 프루스트 소설 가운데 마지막 권을 ‘성공적으로’ 영화화한 라울 루이즈의 <되찾은 시간>은 20세기 영화사의 마지막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루이즈는 다양한 영화적 기법들을 활용해 원작을 단지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유희적으로 재고하면서도 그 다층적 세계를 화면 위에 아름답게 펼쳐놓는다.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이 영화가 원작을 이미 읽은 관객에게는 그것과 대화하게 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매혹적이고 흥미로운 영화의 소용돌이치는 패턴들 속에 길을 잃게 만든다고 썼다.
<두 어머니의 아들>
Comedie de l’innocence, 2000년, 100분, 컬러
영화 속에 보이는 ‘솔로몬의 재판’에 대한 그림이 시사하듯 <두 어머니의 아들>은 한 아들 그리고 그를 둘러싼 두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상황은 이제 아홉살을 맞은 아리안의 아들 카미유가 자신은 이자벨라라는 다른 여인의 아들 폴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된다. 신비한 심리분석 사례와도 같은 이 영화는 라울 루이즈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이야기나 스타일 면에서 다소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듯 보인다. 그러나 “설명이 미스터리를 더할 뿐인 설명불가능한 영화”라고 루이즈 스스로 말한 영화는 끝내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로 보는 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두 어머니 역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와 잔 발리바르의 폭발 직전의 냉정함과 묘하게 신비로운 미소 사이의 대조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