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군 투덜양]
[투덜군 투덜양] 기다리면 해뜰날이 올거라고? <크래쉬>
2006-04-14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투덜양, <크래쉬>의 얄팍한 평등주의에 분노하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니라 <크래쉬>에 작품상을 준 건 아카데미 최악의 실수라고 말한 사람들에게 한표 던진다. 누가 이번 아카데미의 선택을 이변이라고 했는가. 뭔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를 꺼내서 결국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착하게 잘살자’고 마무리짓는 건 아카데미의 딱 떨어지는 입맛이 아니었나.

이 영화에는 열댓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대체로 양면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약간의 똘아이들이다. 뭐, 이해한다. 폴 해기스 말마따나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라고 해서 다큐멘터리에 등장할 법한 인물들을 내세울 필요는 없으니까. 등장인물들 가운데 걸리는 사람이 둘 있다. 지방검사의 아내인 백인 중산층 대표주자 진(샌드라 불럭)과 열쇠 수리공인 히스패닉 서민층(빈곤층?) 대표주자 대니얼(마이클 페나)이다. 둘은 등장인물 가운데 사실 가장 덜 거슬리는 사람들이다. 물론 진은 징징대고 집 열쇠를 고치던 대니얼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불안을 응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차 강도를 당하고 집 열쇠 수리공을 의심하기도 했던 감독의 경험이 녹아들어간 이 인물은 감독 자신이다. 당연히 영화의 눈높이는 진에게 가 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은 평등하다. 나도 반성하고 너도 반성하면 우리는 좀더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지 않겠냐 손쉽게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진이 감독 자신이라면 대니얼은 이 영화에서 감독이 가장 애정을 가지고 그린 인물이다. 대니얼이 침대 속에 숨은 어린 딸에게 가짜 방탄망토를 걸쳐주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장면 중 하나다. 대니얼은 등장인물 중 가장 말수가 적다. 그리고 가장 성실하다. 그는 자신에게 모욕을 주는 진과 아랍계 상인 파니드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한다. 분노해야 할 순간 인내하는 건 그에게 모욕을 주는 사람에게는 좋겠지만 그건 이 영화가 의도하고자 하는 상호이해와 소통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막힌 벽을 뚫기 위해서는 그것을 부수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하는데 대니얼은 하지 않는다. 그걸 훌륭한 사람됨으로 영화는 묘사한다. 결국 계급적 약자들은 저항하기보다 제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 해뜰 날이 있지 않겠냐는 식이다.

덧불이자면 이 영화의 제작배후가 의심스럽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LA는 인간이 살 곳이 아니다. 밤에 LA 거리를 활보하느니 분쟁지역을 산책하는 편이 안전할 거란 느낌까지 든다. 이런 지옥도를 통해 영화는 LA에 행여나 이민(불법이민!) 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나 안 그래도 지구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도시가 LA다. 이민 안 갈 테니 이런 오버질 영화로 사람 위협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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