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스크린 속 나의 연인] 루퍼트 에버릿
2006-04-14
유약하고 불안한, 내 젊은날의 페르소나

지금은 사라진 서울 영동의 씨네하우스가 복합관이 되기도 전, 그 안쪽 골목 안에는 씨네하우스 예술관이라는 별도의 상영관이 있었다. 숨어 있기 좋은 곳이었다. 관객은 우리 일행뿐이기 일쑤였다. <낯선 사람과 춤을>을 보러 간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곳, 씨네하우스 예술관과 서강대 커뮤니케이션 센터, 프랑스문화원, 집앞 비디오 가게가 학교를 제외하고 내가 다니던 전부였던 때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인물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루퍼트 에버릿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젊은 남자 배우였다. 집 앞 비디오 가게에서 <하츠 오브 파이어>를 빌린 것도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이었다. 밥 딜런이 주인공인 록 영화라니 굳이 건너뛸 까닭은 없었다. 그런데 화면을 장악하는 저 음울한 청년은 누구지? 이런, 또 루퍼트 에버릿이었다.

어느 영화 혹은 일련의 영화에서 보인 연기가 좋아서 어느 배우를 좋아한 적은 있지만 극의 페르소나가 아닌 배우 자체의 모습만으로 이처럼 큰 매력을 느꼈던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이십 년 가까이 지난 때 한 일이며 밝히기 부끄럽지만, <로드쇼>라는 일본 잡지에서 <어나더 컨트리>에 출연한 루퍼트 에버릿의 사진을 오려 스크랩북에 넣어두었고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당시 나는 왜 그가 그렇게 좋았는지 애써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다. ‘그냥 좋으니까’라는 다분히 ‘오빠부대’ 같은 감정이었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앞서 이야기한 그 두 영화의 페르소나와 무관하지 않다.

두 아이를 키우며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는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 상류 사회 젊은이. <낯선 사람과 춤을>의 루퍼트 에버릿은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자신을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것이 욕정이건 소유욕이건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한 여인에게 사로잡혀 있고 그것을 온전히 제어하거나 통제할 줄 모른다. 그는 자신이 속해 있던 세계와 자신이 욕망하는 여성의 세계 사이에서 아무런 결단도 내리지 못하며 결국 스스로를 또 그 여인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하츠 오브 파이어>에서 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록 음악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으나 그 열정으로 인해 잠시도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젊은 작곡가. 이제 보니 그의 페르소나는 스무 살 적 내가 갖고 싶던 페르소나였는지 모른다. 그 시절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울었으며 그렇게 혼자 힘들어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무엇보다 싫었다. 나는 그의 페르소나, 그리고 루퍼트 에버릿이라는 개인의 외모에서 유대감을 찾으려 했나 보다. 하얗고 여리다 못해 창백해 보이는 갸름한 얼굴은 뾰족한 코와 가는 턱선,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입술로 인해 더욱 약하고 우유부단해 보인다. 다 자란 남자와 소년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갖춘 듯한 큰 키와 마른 몸은 어딘지 불안하고 쉬 깨질 것만 같다.

조동섭 /문화평론가

한동안 그를 잊고 지냈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으로 루퍼트 에버릿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다시 오르내리게 됐을 때 가슴이 먹먹했다. 그 영화 속의 루퍼트 에버릿도 매력적이지만 그는 내 가슴속의 루퍼트 에버릿이 아니었다. 부드럽고 섬세한 멋을 지니고 있지만 금이 갈 듯 유약한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서른 살이 되던 89년에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청춘 스타의 별을 스스로 떼어낸 후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의 족적에는 물론 박수를 보낸다. 그래도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이 그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나도 어느새 하릴없이 추억을 되새기는 나이가 돼 버린 것일까.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