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입체적인 모노폴리 게임, <시리아나>
2006-04-19
글 : 짐 호버먼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뛰어난 앙상블 연기와 철학적 방법 돋보이는 <시리아나>

스티븐 개건이 쓰고 감독한 <시리아나>는 부시 행정부의 스릴러 후속편처럼 보인다. <시리아나>는 이라크라는 큰 요리만 없을 뿐 텍사스 석유사업가와 아랍의 수장들, 회교 테러리스트들, 교활한 법률가들, CIA, 이란해방위원회, 중국에 대한 두려움, 규제에 대한 증오, 수상스러운 계약과 잃어버린 미사일 등을 둘러싼 조사와 음모의 복잡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건은 2000년 호평을 받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마약극 <트래픽>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시리아나>(로버트 베어의 CIA 회고록에서 영감을 받았고 새로 개편될 중동을 가리키는 정책연구소 용어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그에 견줄 만한 입체적인 모노폴리 게임이다. 실제 개건은 석유를 마약에 비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많은 캐스트, 국제적인 배경에 깊이있는 이야기를 언뜻언뜻 보여주는 영화는 <프론트라인>에 존 르 카레식 이야기를 합쳐놓은 듯하다(<프론트라인>은 미국 <PBS>의 유명 시사 르포 시리즈, 존 르 카레는 영국의 첩보소설 작가- 역자). <인터프리터> 같은 영화가 주는 만족감에 비하면 오히려 영화는 두뇌를 자극한다. 개건의 영화는 2시간 남짓으로 길지만 신세계의 무질서를 보여주는 복잡한 줄거리를 생각할 때 30분 정도 더 길어질 수 있다.

앙상블 연기는 뛰어나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배가 나온 조지 클루니는 한때 야전에서 산전수전 겪었을 무뚝뚝한 CIA 첩보원 역을 맡아 연기한다. 맷 데이먼은 열정적인 젊은 에너지 무역가로 개혁을 고려하는 아랍 왕자(알렉산더 시디그)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의 가족 비극까지 이용한다. 제프리 라이트가 연기하는 워싱턴 법률가는 카자흐스탄의 채굴권을 따낸 크리스 쿠퍼의 조그마한 텍사스 채굴회사와 거대 정유 회사를 합병하는 데 수완을 발휘한다.

어느 한 장면이 영화의 지정학적 역학을 대표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거의 모든 장면들이 미묘한 기대의 반전을 준비한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시디그가 연기한 인물은 바른 사람이고 라이트의 보스(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악당이지만 그외의 인물들이 보이는 도덕성은 그리 명쾌하지 않다. <시리아나>의 시나리오가 가진 특이점은 세 인물의 정직한 의도를 밝히는 면에서 보여지는 과묵함이다. 어떻게 보면 이 덕목이 영화의 단점일 게다. 너무 많은 관점을 보여주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이들을 발전시켜 보여주지는 못한다. 배우들이 지시를 덜 받았는지도 모른다. 클루니가 연기하는 인물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인물인가,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스파이인가 혹은 그 둘 다인가? 이 인물이 각성을 시작하는 때는 언제인가?(클루니는 고문장면으로 척추 부상을 입었다). 데이먼이 연기한 인물은 열광적인 기회주의자인가 아니면 경험없는 이상주의자인가? 라이트는 자신만의 쟁점을 가진 인물인가? 그야말로 수동적인 침략성을 지닌 괴물일까 아니면 단순히 도구에 불과할까? 스릴러 세계에서 인물은 행동에 의해 정의되지만 여기엔 특이하게 과장된 활동들이 들어 있다. 클루니의 배역은 특히 이야기의 극적 표시를 여기저기에 남기는 이상한 재능이 있다.

<시리아나>는 시사적이면서 시대 착오적이기도 하다. 영화는 <암살단> <코드네임 콘돌>류의 워터게이트 시절을 다룬 좌익 스릴러를 상기시키지만 개건은 슈퍼스타 영웅주의에 빠져 있지 않고 오히려 제도를 보여주는 데 더 관심이 있다. 물론 그 제도라는 게 보여질 수 있다면 말이다. 그가 가진 편집적 세계관보다 철학적 방법이 더 돋보인다. 어느 곳에서도 터질 것 같은 테러의 공포와 작은 이야기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의도적으로?) 큰 이야기들이 출몰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계속되는 질문은 우리가 정말 이럴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행동의 중요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개건은 비딱한 프레임과 빼곡한 편집, 격앙된 스테디캠을 통해 실타래처럼 얽힌 이야기를 풀기 힘들게 만든다. 이미지는 스티븐 소더버그를 연상시키고 마이클 만 감독의 스타일보다 <시리아나>가 분명 더 유연하지만 그렇다고 더 단순하지는 않는다. 개건은 관중이, 누군가 ‘모사데크’라는 이름을 예사롭게 언급할 때 역사적 관련을 이해하고, 인물들이 뱉어내는 대사들에서 지독히 상투적인 묘사를 인지하리라 여기고 있다(“이곳에선 조사를 받기 전에 누구나 무고하지”라고 플러머는 라이트에게 말한다).

심지어 가장 교훈적인 장면에서도 <시리아나>는 (<트래픽>처럼) 과다하게 도덕적으로 치장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 있지만 그렇다고 경박하거나 유치하지는 않다.

번역 이담형| 2005.11.22.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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