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한류 열풍’ 갉아먹는 한국영화
2006-04-21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부산국제영화제든, 전주국제영화제든 상영작 가운데는 감독 이름도, 배우 이름도 모르는 낯선 영화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관객이 많아 약간이라도 주목도가 있는 영화는 매진되기 십상인 부산영화제에서, 굼뜬 관객들은 정보가 전혀 없는 영화들 중에서 골라 봐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내 선택기준은 국적이었다. 일본 영화와 영국 영화, 두 나라 영화를 고르면 대체로 보고 나서 실망할 때보다 기분 좋을 때가 많았다.

물론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이 한번 걸러서 가져온 영화들이고, 또 이 두 나라 영화가 안전하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수입된 일련의 일본 영화들을 보면, 또 다시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메종 드 히미코> <박치기> <스윙 걸스> <린다 린다 린다> 등은 전부 다 수작이라고 하기는 힘들어도, 모두 기본을 갖추고 있고 최소한 한가지 이상의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일본에도 잘 만든 영화가 있고, 못 만든 영화가 있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또 한국에서 일본 영화를 찾아 보는 관객층이, 일반 관객보다는 좀더 적극적이고 ‘영화광’적 취향을 가진 이들이어서 수입사들이 작품성에 비중을 더 두고 영화를 사는 경향도 있다. 그러니 국적을 가지고 영화를 평가하는 게 바보같은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은 최근 들어 정부가 앞장서서 매년 일본영화제를 열면서 한국에 일본 영화를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애쓰고 있다. 또 민간 차원이지만 명동의 일본영화 전용관 씨큐앤도 일본 영화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 라인업에 신중을 기한다. ‘국적’이라는 게 영화에서도 브랜드로 통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다.

지난 13일 개봉한 <연리지>는 일본에 팬을 많이 갖고 있는 한류 스타 최지우를 내세운 멜로 영화다. 2~3년 전부터 한국과 일본에 붐처럼 일고 있는,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이다. 한국보다 이틀 뒤인 15일 일본에서 개봉한, 한국 못지 않게 아니 한국보다 더 일본을 겨냥하고 만든 영화로 보인다. 한국에서 평도 좋지 않았고 개봉 첫주말 관객도 전국 11만명에 그쳤다. 일본에서는 시사회 뒤 인터넷(야후 무비) 반응이 안 좋았고(안 좋은 걸 꼽자면 “일본이 봉이냐” “학예회 수준이다”등등), 개봉 첫주에 흥행 순위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하기 애매한 4위였다.

평도 안 좋은 데다 손님도 안 든 영화를 비판하는 것이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짚어봐야 할 것 같은 대목이 있다. 단지 영화를 못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최지우라는 안전판을 믿고서 안이하게 만든 게 아니냐는 점이다. ‘한류’라는 건 정말 드물게 만들어진 국가 브랜드이다. 문화 분야에서 이 만큼 잘 팔리는 국가 브랜드가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그 내용물은 불안하고 제각각인 게 사실이다. 그럴수록 잘 다듬고 채워가야 할 것 같은데, 뭔가를 보태기보다 빼먹으려고만 하는 모습을 다른 데서도 자주 보게 된다. 이대로라면 한국에서 조금씩 착실히 커가는 일본 영화의 브랜드 파워가 한류를 앞지를 날이 곧 닥칠지도 모른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