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춘사월. 영화판에서 연애영화 물량이 대거 방출되는 이달은 또한,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하는 달이기도 하여 필자는 요즘 따스한 봄날의 야구장 풍경을 떠올리며 내심 흐뭇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맘때의 야구장을 떠올리면 별책부록처럼 꼭 함께 따라오는 안해피한 기억 하나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다리 찢기’의 기억이다.
혹 이 대목에서 일순 <혈의 누>를 떠올리시면서 시껍해 마지않으실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런 건 아니고, 프로야구 원년(1982) 개막전 당시 OB베어스의 신경식 선수가 선보였던 그 유명한 다리 찢기 얘기다. 당시 멀쩡한 야구장 한가운데서 행해진, 그것도 무지 평범한 내야 땅볼을 친 타자 주자를 아웃시키기는 대목에서 취해졌던 그 SF적 동작은, 마치 조용한 오후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에 착륙한 UFO를 보는 것만큼의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어린 마음에도 상대편을 약올리고자 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닐까 의심이 들 만큼 화려무쌍하였던 그 동작, 아니, 그 안무는 OB베어스의 어린이 팬들에게는 무한한 경탄을, 그리고 비OB베어스 어린이 팬들에게는 결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던 바, 안타깝게도 필자는 후자에 속해 있었고 여태껏 그 트라우마부터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다시는 마주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 다리 찢기의 아픔은, 불행하게도 극장에서 다시 한번 재현되고 만다. 그렇다. 그것은 <원초적 본능2>라는, 제목만으로 볼 때는 <못 말리는 원초적 본능>의 진지한 버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그 영화를 통해서였다. 제목보다 훨씬 강조되어 포스터에 박혀 있는 스톤 누님의 허여멀건한 다리는, 당 영화의 지향하는 바를 충분히 밝혀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다리는,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초고속으로 달리는 스포츠카에서 응응응하다가, 아, 그 비싼 차를 멀쩡히 가만히 있는 강물에다 냅다 처박는 인트로부터 강렬한 무의미함의 냄새를 풍겨준 당 영화. 당 영화는 이후에도 계속하여 1편을 최대한 재미없고도 칙칙하고도 지루한 버전으로 변모시키려는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화면들을 주야장천 내보냄으로써, 지금까지 정통 에로 마니아임을 자부해온 필자의 정신마저도 혼미케 하였더랬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아직은 잠들지 않은 마니아적 본능으로 뭔가 올 것이 왔음을 직감한 필자는 남아 있던 힘을 모아 처질대로 처진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는데, 그 앞에 펼쳐진 그 장면은, 아아…. 대체 어떠한 감흥도 없던 그 다리 찢기만큼은 정말이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누군가 4월은 잔인한 계절이라 했던가. 이제 비로소 그 의미를 알 듯하다. 화창한 봄날에 마주친 그 무의미한 다리 찢기 하나만으로도, 4월은 충분히 잔인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