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극을 영화화하려는 사람에게 이전 대가들은 원수와 같다. 케네스 브래너는 로렌스 올리비에와 오슨 웰스를 존경하기 이전에 얼마나 질투했을까. 그런데 로만 폴란스키의 <맥베스>에는 그런 감정이 스며들어 있지 않다. 웰스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맥베스>와 <거미성의 집>엔 관심이 없다는 투이며, 웰스와 미후네 도시로의 격앙된 표정과 말투 그리고 휘몰아치는 광기는 찾을 수 없다. 몽유병에 걸린 레이디 맥베스처럼 덤덤하게 대사를 읊는 배우들은 꼭두각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게 되는 것은 영혼이 없는 자의 얼굴에서 당시 폴란스키의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1969년 8월9일, 폴란스키의 부인 샤론 테이트와 친구들이 찰스 맨스를 추종하는 광신도들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되었고, 폴란스키는 <악마의 씨>의 공포를 현실로 경험한다. 그런 그에게 “난 공포란 공포는 질릴 만큼 맛보았다. 살기등등한 생각도 이제 예사가 되어 그 어떤 무서운 일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는 살인자 맥베스는 증오의 대상이자 동지로 다가왔을 게다. 그러니까 <플레이보이>의 지원으로 <맥베스>를 만들 즈음의 폴란스키는 웰스와 구로사와는 물론 심지어 셰익스피어를 지나 마녀와 폭군 맥베스의 전설이 전해지는 11세기 스코틀랜드로 훌쩍 내달았다. 맥더프 모자가 죽음을 맞는 장면이 강간과 피의 이미지로 묘사되면서 임신 8개월이었던 테이트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버남 숲에 둘러싸인 던시네인 성에서 베벌리힐스에 자리한 죽음의 저택이 연상되며, 단도에 수차례 찔리는 던컨의 입에선 테이트의 마지막 한숨이 들리는 듯하다. 게다가 웰스와 구로사와 버전이 연극 무대와 산속의 성이라는 옥죄는 배경에서 벌어졌던 것과 달리 고성과 광활한 땅과 해변에서 진행되는 폴란스키의 <맥베스>는 현실감을 더하는데다 지독하게 잔인하고 음란하기까지 한 묘사는 작품의 정위감이나 격을 한참 지난다. 이전부터 공포와 폭력을 소재로 영화작업을 계속했던 폴란스키는 <맥베스>에 이르러 ‘인간에 대한 믿음의 부재, 공허한 삶과 덧없는 명예, 욕망과 무질서로 혼란스러운 세상’이라는 주제가 뼛속 깊숙이 자리한 영화를 완성해놓았다. 그러니 불경스러울 말일지 모르나 폴란스키의 <맥베스>에선 셰익스피어의 시적 운율을 운운하기보다 황량한 땅에서 울부짖는 한 불쌍한 영혼에 먼저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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