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집시의 시간>
2001-08-22

나조차도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혼자서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개봉관에서는 건전한 청소년이 볼 만한 영화들을 거의 상영하지 않던 때였고, 설사 상영한다 하더라도 그걸 보기에는 용돈이 부족했다. TV의 명화극장은 더빙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비디오 같은 건 누구네 집에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본 영화의 90%는,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했던 영화였다.

그런데 그토록 영화에 대해 무관심한 채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내게 또 하나 믿을 수 없는 일이 있었으니, 영화에 관한 한 나는 운이 엄청나게 좋다는 사실이다. 입시를 치른 뒤 친구와 둘이서 처음으로 본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가 <테스>였고, 대학 입학 뒤 선배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본 한국영화(그때까지 나는 한국영화를 단 한편도 본 적이 없었다)가 <바보선언>이었으며, 회사에 취직한 뒤 홍콩 무협영화를 싫어하던 나를 억지로 끌고간 선배가 보여준 영화는 <아비정전>이었다. 덕분에 나는 당시까지도 팽배하던 고정관념, 즉 ‘한국영화 중에는 볼 만한 것이 없다’라는 편견을 일찌감치 벗어 던졌으며, 영화 상영 내내 옆에서 잠들어 있던 선배가 ‘세상에 이렇게 재미없는 홍콩영화는 처음 봤다’며 투덜거리는 동안 ‘꽤 재밌잖아’ 하고 생각하며 왕가위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겨두게 되었다.

대학을 다닐 때는 이상하게도 나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선배들이 모조리 영화광이었다. 그들은 늘 스탠리 큐브릭이니 에이젠슈테인이니 미장센이니 몽타주니 하며 토론을 벌였으며(나는 당연히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무슨 대학이나 단체에서 영화제를 열기만 하면 나를 끌고다녔다. 이때에도 영화에 관한 나의 운은 계속되었으니, 내가 영화제에서 최초로 본 영화는 <거미 여인의 키스>였고, 프랑스문화원을 처음 갔을 때 그곳에서 상영중이던 영화는 <나쁜 피>였다.

주워들은 소리로 풍월을 삼년쯤 읊고나니 겁이 없어져서, 처음 입사한 잡지사에서 무턱대고 영화담당 기자를 하겠다고 설쳤다. 마침 영화를 담당하던 선배 기자가 막 퇴사한 무렵이라, 쥐뿔도 모르던 내가 시사회를 쫓아다니고 영화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으니, 이쯤 되면 영화가 나에게 베푼 지대한 사랑을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배은망덕하게도 혹은 콧대 높게도, 그 사랑을 무시하고 곧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니까 아마 영화담당 기자 일을 때려치우고 요리 무크나 인테리어 무크 같은 걸 만들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흥행영화는 물론이고(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도 TV에서 해줄 때 보았고, <친구>는 아직도 보지 못했다) 예술영화, 오락영화, 멜로영화, 코미디영화, B급영화 중 어느 한 장르도 섭렵하지 못했으며, 좋아하는 배우 하나 없었던 내게, 영화를 본다는 것은 웬만한 결심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내가 어째서, 어느날 저녁에, 종로까지 가서, 그것도 혼자, 이 영화의 티켓을 끊었는지 모르겠다. 에미르 쿠스투리차라는 감독의 이름조차 내겐 생소했으니, 다보르 듀모빅, 류비카 아드조빅 같은 배우의 이름은 제대로 읽기라도 했을까.

영화관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평일이었고, 마지막회였다고 기억한다. 글쎄, 이런 글을 쓰면서 그나마 영화의 스토리라거나 영화 속의 인상적인 한 장면 정도는 서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정말 미안하게도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런데 왜 ‘내 인생의 영화’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 영화가 생각났을까.

그건 영화가 끝난 뒤 내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손에 잡힐 듯 기억한다. 그래, 혼자 그럭저럭 꽤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난 뒤, 스크린에서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영화관에 불이 켜졌을 때,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건 슬픈 영화였던가? 아니, 스토리 자체는 슬펐을지 몰라도, 감독은 그것을 유쾌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이 비극이었던가? 아니, 그랬다면 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울었겠지.

영화가 끝나고, 영화에 빠져 있던 나와 영화를 보던 내가 분리되는 그 순간, 그 짧은 순간에 내 안의 무엇인가가 변했다. 이성보다 먼저 본능이 그것을 알았고, 그 본능이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상투적일지 몰라도, 그건 첫사랑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사람의 슬픔이었다. 내 속에 무엇인가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의 눈물이었다. 그 눈물은 아주 무거웠다. 아직도 나는 내 방에 걸려 있는 <집시의 시간> 포스터를 볼 때마다 그 눈물이 기억나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가 나에게 베풀어준 사랑의 결정체일지도 모른다.

글: 황경신/ PAPER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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