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정의를 지키는 섹시한 방식, <콘스탄트 가드너>의 레이첼 바이스
2006-04-28
글 : 손주연 (런던 통신원)

레이첼 바이스는 2006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유럽 작가주의 감독의 작품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고군분투했던 지난 14년간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녀에게 오스카를 안겨준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레이첼 바이스는 거대 제약회사의 음모에 맞서 싸우다 살해당하는 운동가 테사로 분했다. 테사는 아프리카의 헐벗은 아이들을 돌보고 제약회사의 횡포에 맞서는 따뜻함과 정의로움을 겸비한 인물이다. 극이 시작하자마자 변사체로 발견되지만, 안정된 삶을 꿈꾸는 저스틴(레이프 파인즈)을 움직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바이스는 테사를 무한한 모성과 섹스어필한 여성성을 동시에 지닌 인물로 묘사해 자칫하면 여성운동가의 삶을 다루는 뻔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래서 테사는 긴장감 넘치는 정치스릴러에 출연하면서도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들의 불행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아프리카의 실상을 직접 보며 많은 깨달음을 얻은 바이스는 “끔찍한 가난마저 압도하는 부유한 영혼을 가진 그들”에게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테사가 됐다. 이것이 그가 아프리카 꼬마들이 준 작은 선물에 크게 감동하고, 유산한 몸으로 옆 침대 미혼모의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테사를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던 이유다. 관객과 평단이 테사의 진심을 공유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키아누 리브스와 함께 출연한 <BBC>의 TV시리즈 <적과 흑>의 성공으로 할리우드로 건너온 바이스는 <체인 리액션>과 <미이라>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스타의 화려한 삶을 꿈꾸지 않았다. 바이스는 유대계 헝가리인 아버지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이국적인 외모를 무기로 활용하지도 않았다. 사고만 치고, 수습은 못하며, 구조만 기다리는 연약한 여주인공도 당연히 거부했다. 대신 이스트반 자보의 <선샤인>과 장 자크 아노의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보여줬다. <미이라> 시리즈와 <콘스탄틴>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꾸준히 출연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고, 인기도 얻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가난한 영화를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지 “대중적 인기를 얻기 위함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래서 바이스의 필모그래피에서 일관된 무언가를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에게서는 지적이고, 당당하면서도 섹스어필한 매력을 지녔다는 공통점이 엿보인다. <미이라>의 에블린은 도서관 책장들을 무너뜨리고서도 “고대 이집트어에 능통한데다 상형문자를 해독할 줄 알기 때문에 해고하진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당당한 여자다. 매력적인 바람둥이 윌(휴 그랜트)이 ‘놀고먹는 한심한 백수’임을 알았을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지적인 레이첼(<어바웃 어 보이>)이나, “(위험하니) 차에서 기다리라”는 존(키아누 리브스)의 이야기에 “남자들이란∼”을 내뱉으며 차 밖으로 나서는 용감한 안젤라(<콘스탄틴>)는 여성적인 매력도 가진 인물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데미지2: 미녀 훔치기> 속 섹시하고 방탕한 미란다와 라디오 DJ 밥을 사랑하는 뇌쇄적인 헬렌(<광끼>), 전쟁 중 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티나(<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게서도 다소곳하게 얌전빼는 여성의 모습을 찾기란 힘들다. 그들은 때론 악하지만 결코 연약하진 않다. 또 한없이 다정하고 착하지만 어리석진 않다. 바이스에 의해 탄생한 캐릭터들은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며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즐긴다.

이제 바이스가 연기를 잘한다는 데 토를 다는 이는 없다. 하지만 그는 연기가 여전히 두렵고 설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기할 때면 여전히 과거 출연했던 연극 중 최고로 꼽히는 두편(<Design for Living> <Suddenly Last Summer>)의 감독 션 마티아스의 음성이 들린다”고 고백했다. “‘난 널 믿지 않아!’라고 소리치던 그는 당시에도 무섭고, 까다로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 너무 인자한 스승이 돼줬다. 그 덕분에 반성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자신에게 유독 엄격한 바이스는 오랜 연인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파운틴>을 통해 다시 팬들을 찾는다. 그는 오는 6월 촬영을 시작하는 왕가위의 신작 <상하이에서 온 여인>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사진제공 Getty Images/ 유로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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