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봤던 일본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가운데 가장 미스터리한 건 TV애니메이션인 <아따 맘마>다. 일본의 평범한 서민 가족의 일상을 그린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엄마는 지금까지 봐왔던 일본영화나 드라마 속의 여성과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속된 의미로 ‘아줌마’스러운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뚱뚱하고 억척스럽고 수다스러우며 뻔뻔하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순풍 산부인과>에서 옆집 아줌마로 등장할 법한 캐릭터다. 뭐 그게 이상하냐 싶겠지만 일본영화나 드라마에서 한번도 이런 캐릭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봤던 일본 여성 캐릭터는 과하면 <도쿄 타워>의 여주인공, 덜해봤자 <메종 드 히미코>의 여주인공 정도로 그들은 여성스럽거나 귀엽다. 30∼40대 여성들은 언제나 상냥하고 조용하며 10∼20대 여성들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특히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는 건 말투인데, 이게 얼마나 본래 일본어 말투와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국어 더빙판인 <아따 맘마>를 볼 때마다 일본어판이 늘 궁금하다. 마트에서 공짜 사은품 받기에 사활을 건 아줌마가 ‘스미마셍’을 연발하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새치기한 옆사람과 얼굴이 벌게져서 싸운다면 그건 또 얼마나 웃길까.
유키사다 이사오의 청춘영화 <오늘의 사건사고>는 추측건대 오늘의 일본의 평범한 20대, 또는 대학생들의 일상을 과장없이 그린 영화일 것이다. 과장이 없으니 대단한 사건사고도 없다. 여기에는 세명의 여성이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한다. 이상한 건 이 여성들이 ‘평범한’ 대학생이라기에는 너무 귀엽고 깜찍하다는 거다. 다른 게 아니라 말투가 그렇다. 좋게 말해 깜찍하다는 거고 제대로 말하면 유치원생들을 데려다놓은 것 같다. 이들은 끊임없이 징징거리는 아기 말투로 남자친구와 남자친구의 친구들에게 투정을 부리고 애교를 떤다. “에잉, 꼭 사려던 치마가 벌써 팔렸다고 몰라몰라, 나 삐졌어” 식의 말투를 연발하는 마키와 그 친구, 소심한 남자친구에게 끊임없이 아이 같은 말투로 푸념을 쏟아놓는 치요가 과연 지금 일본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초상 맞나. 맞다면 나와 상관도 없는 일본사회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일이다. 그리고 여자 셋이 앙상블로 연기하는 콧소리 섞인 징징거림을 보는 건 영화에의 집중을 방해할 지경으로 피곤했다.
이 세 여자의 말투가 진짜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몹시 부럽기도 하다. 남자친구한테 “뭐야뭐야 미워미워”를 연발하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리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페미니즘 따위는 상관없다.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러나 “뭐야뭐야 미워미워”를 연발하다가 여러 남자를 떠나보내며 본의 아니게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한 나로서는 이 여자들의 말투가 딱하고 한심스럽다. 더불어 적어도 이런 도착적 캐릭터를 요구하지 않는 한국에 사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