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우리를 돌아보게 할 바보, <바보> 촬영현장
2006-05-01
글 : 오정연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적막한 병원 복도 의자에 한쌍의 남녀가 앉아 있다. 자신도 모르는 새 잠이 든 남자는 자연스럽게 여자의 어깨에 기대고, 여자는 그런 남자의 의지가 싫지 않은 눈치다. 로맨틱한 청춘영화의 한 장면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잠깐. 꾀죄죄한 점퍼에 추리닝을 입고 한쪽 손엔 붕대를 감은 이 남자의 맨발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사실, 바보다. 강풀의 동명만화를 스크린에 옮기는 <바보>는 천사 같은 바보 승룡(차태현)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가 목숨처럼 아끼는 세 사람이 있다. 바보 오빠를 부끄러워하는 모진 동생 지인, 승룡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으면서 그를 보살펴주는 피아니스트 지망생 지호(하지원), 그리고 거친 외향과 달리 한없이 부드러운 승룡의 오랜 친구 상수(박희운). “정상적인 몸을 가진 우리가 오히려 바보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는 김정권 감독(<동감> <화성으로 간 사나이>)은 자신의 세 번째 장편영화가 “많은 이들이 잊었던 것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바보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4월10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에서 이루어진 촬영은 며칠 동안 일어난 일을 담고 있다. 지인이 유전성 신장질환으로 쓰러져, 지호의 아버지(송재호) 병원에 입원하고, 지호는 걱정으로 병원에서 밤을 새는 승룡의 곁을 지킨다. 며칠 뒤 승룡은 자신의 신장을 동생에게 줄 수 없다는 검사 결과에 슬퍼하지만, 상수의 신장을 이식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우와아아아~~ 그러면 되는 그나아~! 그, 그니까 상수 것을 지인이한테 주면 되는구나~!!!” 너무 자연스러운 바보의 모습이 인상적인 차태현이 붕대 감은 손으로 박수를 치다가 아파하는 디테일을 애드리브로 추가한 뒤, 소리를 지르며 온 복도를 뛰어다닌다. “이 바보야, 조용히 해.” 상수의 친근한 윽박지름도 그의 진심어린 기쁨을 방해할 수 없다.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보는 승룡은, 타인의 선의를 의심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보처럼 서로를 대한다면, 세상이 좀더 살 만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바보>는 5월 중 촬영을 마치고, 가을에 관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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