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범인(凡人)들의 각별한 사정, <존과 제인>
2006-04-29
글 : 오정연

존과 제인 John & Jane
아심 아흘루왈리아/ 인도/ 2005년/ 83분/ 인디비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통신판매 전화의 대부분이 인도발(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제전화를 사용하고, 야간근무인력을 동원해야 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두 국가의 물가 차이를 고려한다면 인도인을 고용하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는’ 장사다. ‘갑남을녀(甲男乙女)’ 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제목의 영화 <존과 제인>은, 인도에서 비교적 인기직종에 속하는 (미국인을 상대로 하는) 콜센터 직원 6명의 꿈과 일상을 소개한다. 밤낮을 바꾸어 생활하는 이들은 호화로운 빌딩숲과 한적한 바닷가 등 다양한 얼굴을 지닌 뭄바이를 활보한다. 광각렌즈에 담긴 이들의 사무실에는 길고 촘촘하게 늘어선 책상과 계속해서 이어지는 통화음으로 가득하다. 백만장자를 꿈꾸면서 분단위 생활계획표에 맞춰 생활하며 미국행을 계획하고, 춤을 좋아해서 친구들과 춤연습에 몰두하며, 자신이 팔고 있는 상품에 진심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은 더 낳은 삶을 꿈꾸는 평범한 지구인이다.

범인(凡人)들의 각별한 사정으로 서정적인 점묘화를 완성한 <존과 제인>은 세계화의 이면을 신랄하고 유머러스하게 요약한다는 점에서 <인간극장>류의 휴먼감동 다큐멘터리와 차별된다. 정규 교육을 받은 인도인에게 영어 의사소통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무뚝뚝한 미국인을 상대해야 하는 이들은 별도의 영어교육을 받아야 하고, 발음을 못 알아 듣겠다며 빈정거리거나 냉랭하게 전화를 끊는 고객을 상대해야 한다. “자동응답긴가요?”라고 묻는 고객에게 “아뇨, 고객님. 저는 빌어먹을 인간인데요.”라고 대꾸하고 싶더라도 참아야 하고, 24시간 교대근무로 유지되는 같은 회사 동료와 결혼한 한 남자는 부인과 근무조가 갈린 것에 고민한다. 미국의 지역명이 적힌 푯말 아래에서 미국 이름을 대고, 미국인처럼 말하면서 미국인을 상대하는 이들이 수시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는 그 모습에선 포스트모던의 기이한 쓸쓸함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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