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한 장면. 미국인 배우에게 일본인 CF 감독은 어마어마하게 긴 주문을 늘어놓지만, 통역을 통해 전달되는 말은 단 한마디, “스마일”이다. 실험영화 감독 하룬 파로키는 이 장면을 들어, 말로 전달되는 언어의 한계와 허무함을 이야기한다. 디지털 스펙트럼 심사위원으로 <영화보다 낯선> 섹션의 상영작을 들고 전주를 찾은 파로키는 교육, 정치, 역사 등 묵직한 인문학적 주제를 다큐멘터리와 에세이필름, 설치작업으로 전달해왔다. 70년대 뉴저먼시네마가 대두될 무렵 영화를 시작한 그가 추구한 것은 실험영화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소통이었다. 그는 특별한 주제와 어려운 어휘가 아닌,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누구도 접하지 못했던 문법의 언어를 고민한다. 그의 영화가 낯설지만 난해하지 않고, 보편적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전단지, 교과서, 자료집에 실린 각종 도표와 아이콘을 영화적으로 편집하여 독일 이민사를 고찰한 <인-포메이션>, 두 편의 그리피스 영화를 통해 그리피스 영화의 몽타쥬가 변화한 궤적을 분석한 <그리피스 영화의 구조에 관하여>. 올해 상영되는 그의 영화 두 편은 파격적인 영상실험을 강행하는 실험영화라기보다는 학생을 대상으로 어려운 이론을 설명한 친절한 교재에 가깝다. “사회문제나 거대담론을 그런 언어로 전달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다. 약간의 무의식을 발휘한다면 사람들이 여지껏 생각하지 못했던 전지구적인 교류가 가능하다.” “상업영화의 화법에 길들여진 관객들이 새로운 이미지에서 메세지를 찾는 것을 점점 어려워하게 된” 현재, 어렵고 험난한 틈새시장을 노리는 파로키는 쉽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을 믿지 않는다. <영화보다 낯선> 섹션에서 상영되는 <키스>를 만든 부인 안트제 에만과 말보다는 영화를 통한 소통에 더욱 익숙하다는 그의 말은 진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