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보이지 않는 물결>의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
2006-05-02
글 : 김나형
사진 : 이혜정
“영화가 끝나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태국 영화의 중심에 선 펜엑 라타나루앙이 전주를 찾았다. 그는 비행기 옆자리에서 아름다운 여자와 12시간 20분을 함께 보내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던 남자는 착륙 직전 그녀의 가방에 몰래 향수를 넣는다. “영화가 끝났다는 건 ‘집에 갈 시간’이란 의미일 뿐이다. 수많은 이야기가 계속될 것이고, 나 역시 여러 뒷 이야기를 상상했다. 집에 온 여자가 서랍을 여니 (남자들이 전한) 향수가 2백개쯤 쌓여있을 수도 있고, 그녀가 비행기에서 영영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그녀가 자살한 이유를 설명하는 장편영화의 도입부가 될 수도 있다.”

그의 영화에는 어딘가로 여행하는 주인공이 종종 등장한다. 그 여정이 전개되는 공간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물결>의 쿄지는 연인을 살해하고 배를 탄다. 그가 탄 배에선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면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진다거나 하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12시간 20분>의 비행기 기내는 차라리 초현실주의 그림에 가깝다. “30분 동안 밀폐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실제 공간을 사용하면 굉장히 지루할 것 같았다. 까맣게 칠한 벽을 세우고, 창문처럼 보일 랜턴을 늘어놓고, 소파 두 개를 갖다 놓았다. 연극 무대 같은 세트를 보니 더 많은 영감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물결>은 경우가 좀 다르다. 나쁜 일을 저질렀을 때 자신도 나쁜 일을 당해서 보상하고 싶다는 생각 해본 적 없나? 이 영화는 죄의식에 대한 영화다. 배에서의 시간은 쿄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건지도 모른다.”

그는 <보이지 않는 물결>을 찍기 전, 유리벽에 부딪혀 45군데나 꿰매는 사고를 당했다. 감독 일을 하며 다른 이들에게 입힌 상처를 보상하는 것 같아, 병원에 누워있는데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대가를 치렀으니 이제 더 사악하게 굴어도 되겠지?” 괴상한 변명을 하는 그의 얼굴에 순간 짓궂은 표정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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