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배트> Combat
파트릭 카르팡티에/ 벨기에/ 2006년/ 57분/ 디지털스펙트럼
고통에서 쾌락, 그리고 복종에 이르는 사랑의 과정을 그린 <컴배트>는 극영화와 실험영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욕망의 끝을 엿본다. 동성애이자 사도마조히즘 관계를 탐닉하는 두 사내가 숲속에서 벌이는 격렬한 몸싸움과 몽환적인 일상이 교차하는 가운데 한 남자의 꿈꾸는 듯한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내 욕망이 두려웠다”던 이 남자의 목소리는 결국,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이에 충실하게 된다. 두 남자의 간결한 대화가 이 남자의 깊이있는 독백을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짧은 러닝타임과 간결한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지만, <아들>의 집요한 핸드헬드와 <인티머시>의 창백한 푸른 톤, <브로크백 마운틴>의 담담하여 더욱 격렬한 감정 등 영화를 보는 내내 풍부한 레퍼런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내공이 돋보인다. 때로 잘 세공된 내러티브 보다 관객의 오감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영화적 방식이 낯선 욕망을 가까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 영화는 두 겹의 내러티브를 지녔다. 그 하나가 내레이션을 따른다면, 나머지 하나는 세밀한 공감각의 형태로 전개된다. 후자를 구성하는 것은 스산한 바람소리와 타는 듯 붉은 하늘과 스산한 달빛 등의 자연과, 두 남자의 생생한 살결이다. 게임이 거칠어지고, 고통이 쾌락을 거쳐 급기야 진정한 의미의 복종에 도달하는 과정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탄탄하게 관객을 설득시킨다. 두 남자가 서로에게 상처를 내거나 보듬는 모습에 집중하다보면 급작스럽게 결말이 찾아온다. 이는 오히려 무한 반복 혹은 심화를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