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사나이>를 기억한다면 여인의 모습을 잊어버렸을 리 없다. 담배를 피우며 낙엽이 깔린 가로수길에서 여인을 기다리는 남자. 점처럼 조그맣게 보이던 여인이 다가온다. 남자는 가슴속에 담은 말을 꺼내려 하지만 여인은 그저 냉랭한 표정으로 남자를 지나쳐 사라져간다. 그리고 스산하게 깔려오는 음악. 영화팬들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 마지막 장면은 오슨 웰스가 “당신 인생에서 볼 수 있을 가장 섹시한 존재”라고 찬탄했던 이탈리아 여배우 알리다 발리의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다.
알리다 발리가 지난 4월22일 천국의 가로수길을 걸어 사라졌다. 항년 84살. 1921년 이탈리아 풀라에서 태어난 그는 15살의 나이로 영화계에 데뷔했고,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는 “제2의 잉그리드 버그만을 발견했다”고 외친 전설적인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에 의해 국제적인 여배우로 떠올랐다. 전성기의 대표작으로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패러다인 부인의 재판>(1948), 루키노 비스콘티의 <센소>(1954), 캐럴 리드의 <제3의 사나이>(1948) 등이 있다. 그녀를 지속적으로 찬미해온 팬이라면 다리오 아르젠토의 <인페르노>(1980) 역시 기억할 것이다.
알리다 발리의 장례식은 지난 4월24일에 열렸으며, 로마 시장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 중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추도사와 함께 그녀를 애도했다. 물론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뿐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