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뜨겁고 끈끈한 코엔식 치정극, <분노의 저격자>
2006-05-04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사실 줄거리만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극히 단순하다. 남편과 남편이 운영하는 클럽에 근무하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아내. 남편은 사립탐정을 고용해 아내의 불륜을 추적하고 결국 청부살인을 사주한다. 하지만 이 닳고 닳은 치정극이 코언 형제의 손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한마디로, 마술 같은 경험이다. 인물들의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도 공간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이나, 인물들 뒤로 배치된 사물이나 적막함 가운데 퍼지는 사운드, 그리고 인물들의 움직임보다 한 템포 전에 혹은 뒤에 등장하는 그림자를 활용하는 능력은 경탄할 만하다. 무엇보다 한 공간 안의 인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듯 포착해내는 촬영은 상황 속에 갇힌 인물들의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데 더없이 적절하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루는 각 장면들의 밀도는 상당히 높다. 그건 영화 속의 그 무엇 하나도 무의미하게 등장하는 법 없이, 모든 것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남편과 아내, 아내의 연인, 그리고 사립탐정은 모두 하나의 줄기에서 파생된 인물들이지만, 그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코언 형제는 인물들 각각의 사정, 나아가 그들의 심리를 개별적으로 부각하면서도 이를 하나의 맥락으로 꿰기 위해 오인의 구조를 이용한다. 말하자면,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 끊임없이 지연될수록, 인물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고, 상황은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확장된다. 인물들은 자신의 행동을 추동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잊은 채 죄의식과 공포와 신경증에 포획되어 극단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살인과 죽음은 계속된다.

코언 형제의 이 정교한 데뷔작에서 <파고>를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끝없이 황량하게 뻗은 도로 위를 불안하게 달리는 낡은 자동차, 인위적인 클라이맥스 없이도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이상한 긴장감, 그리고 참으로 흥미로운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 다만, <파고>에서는 과거에 비해 한결 느긋해졌으나 훨씬 더 냉정하게 독해진 감독의 시선이 느껴진다면, 이 작품에서는 때때로 데뷔작다운 뜨겁고 끈끈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어찌되었건, 최근 코언 형제의 흔적들(이를테면, <참을 수 없는 사랑>이나 <레이디 킬러>)에 실망을 금치 못하는 이들에게 <분노의 저격자>는 젊은 형제가 남긴 영원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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