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Mr. 할리우드, 루브르에 가다, <다빈치 코드>의 톰 행크스
2006-05-05
글 : 김혜리

1-1-2-3-5-8-13-21…. <다빈치 코드>의 개봉을 앞둔 톰 행크스(50)의 커리어는 한 숫자가 앞의 두 숫자를 합한 값과 같은 피보나치 수열을 연상시킨다. 시트콤에서 출발해 견실한 코미디언으로 자리를 굳힌 그는 유머와 페이소스가 어우러진 페니 마셜의 드라마 <빅>과 <그들만의 리그>, 노라 에프런의 로맨틱코미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스타성을 공인받았고 이어 승부수를 던진 <필라델피아>(1993)와 <포레스트 검프>(1994)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따내면서 일약 할리우드의 거물로 도약했다. <댓 씽 유 두>(1996)로 시작한 감독 경력도 톰 행크스는 지극히 안전한 방식으로 가꿨다. 성공을 거둔 출연작 <아폴로 13>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뿌리를 둔 TV 프로젝트 <지구에서 달까지>(1998),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를 통해 연출 역량에 대한 신임을 두텁게 했다. 그처럼 톰 행크스는 내려갈 줄 모르는 계단식 여정을 밟아왔다. 사람을 곁에 두는 방식도 비슷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론 하워드, 브라이언 그레이저, 로버트 저메키스,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제작을 권한 아내 리타 윌슨까지, 행크스의 확고한 신뢰를 얻은 ‘멤버십 클럽’의 동지들은 그의 커리어를 함께 지탱해왔다. 지난해 톰 행크스가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의 부회장에 선출됐다는 소식도 그리 놀랍지 않았다.

상자 속에서 번번이 가장 맛있는 초콜릿만 집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톰 행크스. 그가 발휘하는 저력의 비결은 ‘미더움’이다. 이 믿음은 예찬이나 매혹의 감정과 구별된다. 그것은 주변 어디에선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법한 사람이라는 느낌에 가깝다. 어느 투표에서 “술집에서 취했을 때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마음 놓고 부탁할 수 있을 것 같은 스타”로 톰 행크스가 뽑혔다는 사실은 그가 가진 매력의 본성을 암시한다. 학창 시절 전 과목 B학점 학생이었고, 중독된 기호품이라곤 땅콩이 든 M&M 초콜릿이 고작인 남자 톰 행크스는 연기에서도 잔혹한 폭력이나 섹스를 조심스럽게 배제하는 배우다. 영화 속에서 그의 캐릭터가 치르는 경험을 요약하자면 대개가 시행착오다. 영웅으로서 톰 행크스가 가진 유일한 위대한 능력은 모든 일을 겪고 끝끝내 살아남는 것이다(심지어 <그린 마일>에서 그가 분한 교도관이 속죄하기 위해 받는 형벌은 영생이었다). 미국의 한 언론은, 베트남 전쟁과 정치적 격변, 우상의 죽음과 달 착륙을 목격한 베이비 붐 세대가 평범하지만 끈질긴 생존자 톰 행크스에게서 위로와 안도감을 찾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머리에 꽂았던 아름다운 꽃들은 사라졌고 친구는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했지만 어쨌든 견디고 버텨 한줌의 깨달음을 호주머니에 간직한 세대에 톰 행크스는 이상적인 자화상인 것이다. “내가 얻은 깨달음은 지름길이란 없다는 것, 주어진 거리는 터벅터벅 주파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캐스트 어웨이> 개봉 즈음 톰 행크스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출연료 2천만달러를 상회하는 대스타 집단 중에서도 유독 톰 행크스가 할리우드의 페르소나로 꼽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톰 행크스는, “선의를 갖고 다가가기만 하면 웬만한 인간의 상처는 치료되고 웬만한 사회 모순은 화해할 수 있다”는 할리우드영화의 나이브한 세계관을 관객에게 설득하는 데에 있어 추종을 불허한다. 톰 행크스의 전환점이 된 작품 <포레스트 검프>는 그의 설득력과 할리우드식 철학이 만나 도달한 아슬아슬한 지점이기도 하다. 검프의 선량함과 비판적 사고의 결핍상태가 곧 지혜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순간 역사적 책임은 깃털처럼 하늘하늘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톰 행크스는 웬만하면 영화 속 드라마는 물론 박스오피스까지 혼자 짊어지는 일이 다반사인 ‘원톱’ 배우다. 심지어 <캐스트 어웨이>에서는 모노드라마를 하다시피 했고 그도 모자라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에서는 1인5역을 감당했다. 장 클로드 반담이 쌍둥이로 분한 <더블 반담>은 반담의 팬들도 지루하게 만들었으나 톰 행크스는 박스오피스에서 여전히 환대받았다. 한편 톰 행크스는 <터미널>의 빅터 나보스키 역과 <레이디킬러>의 사기꾼 교수 역에서 과시한 억양과 제스처의 완전한 둔갑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스스로 난제를 부과하고 돌파하는 일을 즐기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년 만의 신작 <다빈치 코드>에서는 어떨까?

<다빈치 코드>는 노련한 배우에게는 수월한 과제일 성싶은 영화다. 무엇보다 댄 브라운의 원작 <다빈치 코드>는 각 장(章)의 끄트머리에 자석을 붙여놓은 듯한 소설이다. 생각하기 전에 손이 앞질러 페이지를 넘긴다. 종교와 역사를 뒤흔들 수수께끼가 고비마다 덫을 놓는 긴박한 이야기는 그 자체가 힘찬 엔진이다. 톰 행크스의 남다른 흡인력은 좀더 모험적인 시나리오에 이용되는 편이 정의롭지(?) 않은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영화 <다빈치 코드>가 누리는 사치가 조금 괘씸할 지경이다. 톰 행크스가 분하는 하버드의 종교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은 인디아나 존스와는 다른 수동적인 영웅이다. 원작에서 이야기의 주도자는 랭던의 파트너인 프랑스의 암호해독요원 소피 느뵈이며, 랭던은 남성에게 유리한 몸싸움에서도 상대를 제압하는 일이 드물다. 그의 숨가쁜 액션은 대부분 뇌세포 안에서 일어난다. 아마 영화의 제작진은 <다빈치 코드>가 가진 관념성에 관객을 접근시키는 친근한 안내자 역할을 톰 행크스에게 기대했으리라(원작자는 로버트 랭던의 외모를 해리슨 포드에 비교했다). 한편 <다빈치 코드>는 톰 행크스에게 친애할 만한 적수들을 선사한다. 미스터리를 같이 풀어갈 티빙 경 역할의 이안 매켈런과 음모의 하수인인 실라 역의 폴 베타니가 그들이다. 리액션을 연기의 기본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배우로서 <캐스트 어웨이>의 무인도에서도 파도나 나무와 반응을 주고받았던 톰 행크스로서는 매우 호사스런 조건이다.

제작사 소니픽쳐스가 공개한 인터뷰에 따르면, 톰 행크스가 <다빈치 코드>에서 도전으로 받아들인 요소는 베스트셀러 원작의 인지도와 인물에게 눈돌릴 틈을 주지 않는 압도적 플롯이다. 소설처럼 사건의 흐름에서 자유롭게 빠져나와 한가로이 미술과 종교의 역사를 해설할 수 없는 영화의 핸디캡은, 고스란히 배우가 채워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상징과 기호에 관한) 방대한 정보와 지식을 캐릭터의 머릿속에 넣고 사실적으로 입에서 흘러나오게 하는 것, 장면을 실제로 어떻게 구축해갈 것인가가 문제였다. (영화를 하는) 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암굴의 마돈나>를 몇 페이지에 걸쳐 설명하는 사치를 누릴 입장이 못 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관객에게 전달할 것인가?” 이처럼 정확하고 올바른 질문을 던진 그가 어떤 답을 얻었는지는 <다빈치 코드>의 첫 시사가 있을 칸영화제의 관객이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로버트 랭던이라는 인물에 대한 톰 행크스의 견해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로버트 랭던은 완벽한 직업, 완벽한 삶을 지닌 자다. 그는 절대적으로 자신을 매혹하는 것만 뒤쫓으며 산다.” 어쩐지, 톰 행크스 본인의 현실을 이르는 말처럼 들리지 않는가?

사진제공 소니픽쳐스릴리징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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