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 제기, <안드레이 루블료프>
2006-05-04
글 : 정재혁

안드레이 루블료프 Andrei Rublev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 러시아 | 1966년 | 185분 | 소비에트 특별전

 

<이반의 어린시절> 이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내놓은 두번째 장편 영화. 러시아의 성상 화가인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영화의 초점은 그를 둘러싼 15세기 러시아에 있다. 영화는 한 남자가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들판이 화면 가득 펼쳐지며 그 사이 강이 흐른다. 아름다운 풍경에 미소를 짓는 남자는 모든 것이 행복해보인다. 하지만 갑자기 기구는 추락하고 그는 땅에 떨어진다. 추락의 이미지로 서두를 연 영화는 곧 추락한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삼위일체를 그리기 위해 모스크바로 가는 루블료프는 곳곳의 전쟁과 약탈, 강간과 살인의 현장을 목격한다. 종교인으로써, 예술가로써 그는 현실적 고뇌에 빠지고 영화는 예술가의 임무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과연 종교의 존재 가치는 무엇인가,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총 9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영화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모여 전체적인 주제를 연상시키는 프레스코 구조를 취한다. 타르코프스키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러시아 귀족사회와 민중 사이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루블료프는 현실적인 고통과 절망 속에서 이를 극복할 종교적 사명감을 획득하고, 영화는 마침내 완성된 그의 작품 ‘성삼위일체’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를 종교적 메시지로만 읽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감이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종교와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을 제기한다. 그의 대표작인 <향수>, <희생>만큼의 깊이는 아니지만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를 짐작해볼 수 있는 단서가 되는 작품이다. 1969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러시아 내에서는 당국의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1971년까지 상영이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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