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5월13일(토) 밤 11시
한때, (혹은 여전히) 이란영화들은 서구영화들 틈에서 유행처럼 빛났다. 이란영화들에 대한 전세계적인 주목이 낯선 세상에 대한 매혹에서 비롯된 것인지, 새로운 이야기 구조에서 비롯된 것인지, 삶 그 자체의 거친 풍경들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일단 논외로 접어두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서 만개한 이란영화들의 세계는 시적이었다. 거기에는 가난한 일상이 있었지만, 그 비루함을 잠재울 삶의 순수성이 있었다(고 서구 영화인들은 판단했을 것이다). 이란의 현실은 풍경과 동심 속에서 객관적인 미학적 대상이 되어갔다. 그 가운데서, 그저 바라보기를 그치고 현실 속으로 들어가자고 조용히 외치는 영화 가족이 있다. 구성원 모두가 영화로 세상을 보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가족. 그들의 카메라는 이란 내외를 가로지르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찍는다.
마흐말바프의 딸인 사미라 마흐말바프가 고작 스무살에 만든 영화 <칠판>은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쿠르드 고원지역을 무대로 한다. 두 선생님이 칠판을 등에 메고 학생들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들은 국경을 오가며 밀수품을 나르는 소년들을 만나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방랑하는 노인들과 마주친다. 두 선생님의 어깨에는 커다란 칠판이, 소년들의 어깨에는 장물들이, 노인들의 등에는 짐 보따리가 매달려 있다. 그들은 절벽처럼 깎인 언덕을 넘고 위태롭게 좁은 길들을 지나 서로 부축하며 더딘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들은 모두 너무 왜소하고 그들을 누르는 삶의 무게는 너무 무겁다. 그리하여 칠판은 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신성한’ 교육의 수단이 되길 포기한다. 칠판은 아이의 부러진 다리에 덧대기 위해 쪼개지고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는 방패가 된다. 감독은 그 과정에 어설픈 희망이나 사랑, 꿈 따위를 집어넣고 풀어가는 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 어린 감독은 냉정하게 끝까지 밀고 나아간다.
영화 속에서 칠판을 멘 선생들 중 한명을 연기한 이는 바흐만 고바디이다. 잘 알려져 있듯, 그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과 <거북이도 난다>를 만든 감독이다. 그는 그렇게 영화 안과 밖을 오가며 영화 속 대상과 영화 밖의 전능한 감독의 시선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지우려 애쓴다. <칠판>은 현실의 고통에 카메라를 들이댄 수많은 영화들처럼, 미학과 윤리학 사이에서 방황하는 영화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답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이 영화는 그렇게, 적어도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