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생짜 액션’ 위한 화려한 이중주, <짝패>
2006-05-16
글 : 강병진

류승환 정두홍의 액션대작전 <짝패>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영화 <친구>의 카피이지만, <짝패>가 훔쳐간다 해도 용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자타가 공인하는 액션키드 류승완과 액션의 마에스트로 정두홍. <짝패>는 영화감독과 무술감독으로서 한국 액션영화의 한계치를 끌어올리던 이들의 액션 이중주다. 게다가 이번에는 액션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연기를 통해서도 듀엣을 이룬다. ‘액션’에 있어서만큼은 두려울 게 없을 만남이다.

<짝패>의 무대는 충청도의 가상도시 ‘온성’이다. 서울에서 형사 생활을 하던 태수(정두홍)는 어린 시절 죽마고우 왕재(안길강)의 부음을 받고 십여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어릴 적 친구 필호(이범수)와 석환(류승완)을 만난다. 하지만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고, 친구와의 만남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왕재의 갑작스런 죽음에 의문을 품게 된 태수는 그의 주변을 중심으로 조사를 시작하고, 그 와중에 정체불명의 패거리들한테 공격당한다. 때마침 등장한 석환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기는 하지만, 의혹은 더욱 짙어진다. 본격적으로 왕재의 죽음을 파헤쳐 들어가는 태수와 석환. 그들이 죽음의 배후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지옥으로 변해버린 고향이 모습을 드러낸다. 태수와 석환은 어느 새 운명적으로 짝패가 되어 보이지 않는 적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야기의 골격은 단순하지만, 류승완과 정두홍이 구상한 액션은 만만찮다. 특수효과는 물론이고 와이어와 대역을 배제한 <짝패>는 보이는 그대로의 ‘생짜액션’을 추구한다. 덕분에 몸 자체를 액션을 위해 단련한 정두홍과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통해 실제 액션연기를 선보였던 류승완일지라도 <짝패>에선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하거나 얼굴에 상처를 입는 등의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청주 본정통에서 벌어지는 100대 2의 액션신과 <킬 빌>의 청엽정 결투를 연상시키는 대규모 라스트 결투신은 그러한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물이다. 또 여기에 서울액션스쿨의 스턴트맨들이 총출동하여 액션 자체의 순수한 쾌감을 담아내고 싶다는 열정을 더했다. 이보다 더한 액션은 있을 수 있지만, 더 이상의 절묘한 ‘합’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류승완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한 후 류승완은 ‘언제나’ 충무로의 기대주였다.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 등의 작품은 데뷔작이 이끈 기대의 절반만 충족해주었지만 그의 이름 앞에 붙은 ‘액션키드’니 ‘한국의 타란티노’니 하는 수식어는 떼어질 줄 몰랐다. 글이 아닌 영화 자체로 영화를 학습한 이력은 많은 영화감독 지망생의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했고, 한편으로 그는 지금 한국 액션영화를 가장 치열하게 이끄는 감독이기 때문일 것이다.

<짝패>는 류승완의 전작들에 비해 더 많은 기대를 짊어진 작품이다. 맨주먹으로 일궈낸 데뷔작의 액션처럼 날것 그대로의 액션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감독 자신이 1인4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연출과 각본은 당연하고, 제작자 역에 더해 연기까지 해낸 이 영화를 통해 류승완은 정말 그가 흠모해 마지않는 선배감독처럼 되고 싶었나 보다. 그는 성룡,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 등 액션 자체의 매혹을 위해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며 공들인 선배들을 닮고 싶다고 항상 말해왔다. 단, 그들과 달리 류승완의 도전은 배우에서 감독이 아닌, 감독에서 배우로서의 ‘역할 전이’다.

사실, 학창 시절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배우’로 인식했던 류승완 감독에게 배우는 최고의 꿈이었다. 이후 ‘영화를 만드는 직업은 배우가 아닌 영화감독’이란 걸 알고부터 그는 ‘영화감독’이란 업을 향해 자신의 꿈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서는 어린 시절의 로망이 제 나름대로 꿈을 키워가고 있었을 듯.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는 형사 석환을 직접 연기하며 스턴트맨 못지않은 액션을 선보였고, 사수인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중국집 배달원을 연기했다. 또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는 극중 종두(설경구)의 동생 역을 맡아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짝패>에서는 무려 22번의 NG 끝에 540도 회전 발차기에 멋들어지게 성공했다고. 갖은 고생 탓에 무릎의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진통제를 달고 살아야 했지만, <짝패>를 통해 그는 ‘액션이 되는 액션영화 감독’이란 타이틀을 더욱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올해로 데뷔한 지 6년째, 류승완의 나이는 이제야 서른셋이다. 아직 그에겐 만든 영화보다 만들어야 할 영화가 더 많으며, 아울러 더 많은 액션을 선보일 기회도 많다. <짝패>를 통해 그는 또 다른 기대를 모을 것으로 보인다.

정두홍

‘있다. 누군지는 비밀이다.’ <주먹이 운다> 개봉 이후, 류승완 감독은 차기작인 <짝패>의 무모한 액션을 연기할 배우가 한국에 누가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혹시 정두홍이 아닐까?’싶은 예상은 쉽게 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이>이후 <주먹이 운다>까지 합을 맞춰온 덕분이기도 했지만, 와이어도 없고, 카메라 트릭도 없이 액션 자체를 명확하게 보여줄 한국의 배우는 정두홍 말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두홍은 지금 현재 한국에서 가장 ‘낯익은’ 무술감독이다. 그가 디자인한 액션영화는 이제 정두홍이란 이름 석자를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촬영과 편집은 물론, 연기까지 고민하며 가장 영화적인 액션을 만들어온 만큼 현재 그의 이름은 신뢰도 절정의 액션을 의미한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쇄골에 12개의 볼트를 박고, 만성이 되어버린 허리 통증을 갖게 되었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정두홍은 이제 낯익은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오비련을 맡은 이후 <피도 눈물도 없이>의 침묵맨,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흑운 등 주로 액션이 필요한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또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에서는 순박한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심지어 <챔피언>에서는 김득구에 이은 2인자로서의 감정을 펼치기도 했다. 최고의 액션배우가 되려다 최고의 무술감독이 되었지만, 결국 배우의 꿈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짝패>는 단순히 그에게 또 하나의 출연작이 아니다. 무술감독 정두홍에게 이 작품은 지금이 아니면 시도하지 못할 프로젝트다. 지금껏 불, 권투, 레슬링, 전쟁 등 다양한 액션을 디자인하면서도 항상 사실성과 진정성 있는 액션을 추구한 그에게 <짝패>는 한국영화의 액션을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 “할리우드와 홍콩에 뒤지지 않는 한국적인 액션영화를 만들자”는 류승완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인 것도, “몸이 으스러지더라도 액션에 있어서만큼은 끝을 보자”는 무시무시한 약속을 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짝패>는 자신이 설립한 서울액션스쿨이 제작사로 처음 이름을 올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서울액션스쿨은 이 영화를 시발점으로 하여 미국과 유럽 시장 진출을 모색할 계획이다. 여전히 최고의 액션을 꿈꾸는 정두홍의 다음 행보는 바로 ‘영화 연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얘기를 다룬 액션영화 <바운서>로 그는 필모그래피를 더욱 다양하게 채워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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