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국경의 남쪽> 배우 차승원이 살아가는 법칙
2006-05-12
글 : 박혜명
사진 : 오계옥

양재동 시민의 숲에서 사진촬영을 하기로 약속했다. 차승원은 2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지난주부터 계속된 목감기 때문에 급히 병원에 다녀온 길이라 했다. 한가한 오후 땡볕이 필요한 사진이었는데 해가 많이 기울어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차승원은 본론부터 물어왔다. 본의 아니게 늦었지만 전체 일정에는 차질이 없게 해주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제가 알아서 잘 할 수 있습니다. 모델 10년, 영화배우 10년을 합쳐 20년을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있으면서 그는 효율과 효과의 법칙들을 많이 체험한 듯하다.

법칙 하나, 될 만한 것에는 목맨다

“홍보 활동을 예로 들면, 나는 될 만한 것에는 목을 매서 하는 성격이다. 가짓수는 몇개 안 된다. 될 법하지 않은 것은 건드리지도 않는다. 이 사람은 맡기면 다 열심히 한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다 하라고 하면 그건 아니란 말이다. 그럼 나는 어느 순간 확 놓아버린다.”

될 것에 매달려 최선을 다하는 차승원은 다가올 미래를 종종 내다보는 사람이기보다 주어진 현재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나한테 쪽팔리면 안 되고, 나한테 창피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월남한 북한 청년의 사랑을 다루는 <국경의 남쪽>에서 그는 북한 사투리와 호른을 4개월간 각각 매일 3∼4시간씩 배웠다고 한다. “영화 안에서 어떤 기술을 익히는 건 전적으로 배우의 책임이다. 많이 할수록 느는 것이고 시간을 투자할수록 덜 욕먹는 거다.”

될 것에 매달려 최선을 다하는 차승원의 가장 좋은 예는 <차승원의 헬스클럽>이다. <차승원의 헬스클럽>은 15년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온 차승원이 게스트들의 몸 관리를 8주간 돕는 리얼리티 쇼다. 게스트 중에서 ‘국민약골’ MC 이윤석은 10kg 체중 및 근육 증가에 성공했고 비만 체형의 개그맨 정형돈은 10kg 체중 감량을 이뤘다. <차승원의 헬스클럽>이 방영되는 기간 동안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옳다 판단되는 것을 무조건 밀고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공격적이고 저돌적”으로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존재한다는 건 차승원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차승원은 무엇을 해도 열심히 하는 것이 표가 난다. 그래서 그가 무엇을 한다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이벤트다.

법칙 둘, 노력이나 힘이 부치면 오기와 근성으로 간다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뭘 해도 힘이 없어 보인다. 나는 지금 100% 올인하고 있는데 왜 아직도 다 이루지 못했는가, 라는 오기와 근성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다. 노력이라는 것에 한계는 없다. 더 노력하고 싶은데 힘에 부쳐 못하는 것뿐이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 아직 남아 있다. 그에 대한 오기 때문에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영화배우로서 차승원은 베스트셀러가 지닌 보편적 감동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어한다. 이 지점이 그의 오기와 근성이 향한 목표다. “세상의 어떤 것도 이야기될 수 있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그러면 안 된다. 대중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적어도 10명 중 8명에게는 그 이야기가 마음에 가닿아야 한다. 그게 대중문화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명작이 되는 거다.” 모델 차승원이 ‘티켓파워 지닌’ 원톱 배우 차승원으로 위상을 달리한 시점부터 보면, 그의 행보는 김상진 감독과의 파트너십으로 대변되는 코미디 장르로부터 추리물 <혈의 누>와 형사물 <박수칠 때 떠나라> 그리고 멜로물 <국경의 남쪽>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코미디냐 스릴러냐, 배우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 것이냐는 차승원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장르 안에 있건 좀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차승원의 필모그래피에서 짚어내야 할 것은 한 배우의 이미지 변신의 궤적이 아니라 그의 출연작들이 하나같이 뚜렷한 장르영화로 구분된다는 공통분모다. 베스트셀러가 되기 위해 장르보다 안전한 장치는 없다.

법칙 셋, 도달점까지 여유를 잃지 않는다

“얼마 전 송지오 패션쇼 무대에서 느낌을 받았다. 나를 향한 시선들이 씨줄 날줄로 엉키면서 한데 딱 뭉친 듯한 느낌. 그거거든. 그날 무대에 선 모델들이 25명 정도 됐다. 백 스테이지에서 다 같이 대기하고 있는데 22∼23살 된 애들은 전부 머리 만지고 뭐, 정신없지.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불필요했다. 불필요하다기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여유로웠다.”

지난 4월 말, 10년 만에 오른 런어웨이 무대에서 차승원은 자신이 영화계로 와 이루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새삼 되새겼다. 모델로서 이미 얻은 그 느낌을 영화배우로서도 얻고 싶다고, 도달 지점까지 이제 얼마 안 남은 것 같다는 말을 그는 덧붙였다. "<국경의 남쪽>이 나한테 중요한 것이 그 때문이다. 내 진심이 이전보다 더 많이 들어간 영화다. 내 자신이 극중 인물과의 거리를 훨씬 더 좁히고난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이번 영화를 알아주고 공감해준다면 거기서 파생될 수 있는 내 연기라는 건 정말 많아진다.” 영화배우 차승원이 도달해야 할 지점. 그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것. 그것은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대중의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다.

이날 사진촬영과 인터뷰를 마치고 차승원은 강남의 한 극장 일반시사 현장에 무대 인사를 하러 갔다. ‘헬스클럽’의 히어로 차승원이 건강한 표정으로 등장하자 관객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예, 차승원입니다.” 다시 쏟아지는 친근한 환호. 본인도 기쁜지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이 자리에서 차승원은 친필 사인한 축구공 10개를 이벤트 당첨된 관객에게 손수 건네며 일일이 껴안아주고 사진을 함께 찍어주었다. 남은 공들을 이리저리 객석으로 던지며 “안경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저쪽엔 어르신도 와 계시는데 정신 사납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는 재치도 빼놓지 않고 발휘했다. 작은 상영관 안에서는 차승원의 말 한마디가 곧 손뼉과 웃음과 환호성으로 이어졌다. 배우생활 10년의 연륜이 묻어나는, 있는 모습 그대로의 차승원이 베스트셀러로서 사랑받는 광경이었다.

의상협찬 송지오 옴므, 폴로 랄프 로렌(차승원 개인소장품), 디젤(차승원 개인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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