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있어줘>는 괴물 같은 영화다. 그처럼 고요하게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다니.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서 요란떨거나 약삭빠르지 않은 이야기 방식으로 이렇게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니 하며 했던 경탄의 백배 정도를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사실 초반을 보면서는 의심했고, 시큰둥했다. 까칠한 서민의 일상과 대사없음, 이를 통해 보여주는 고독과 소외 등등은 이미 동아시아계 작가 선생님들께서 여러 번 보여주신 바 아닌가. 게다가 ‘진정한 사랑이 진짜 존재할까, 물론, 마음만 따뜻하다면’이라니, 귀여니와 제인 오스틴, 그리고 캐리 브래드쇼를 섞어놓은 듯한 타자기의 문장은 웬 말씀?
그런데 세명의 관계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엮이고 문제의 테레사 첸이 점점 스크린의 중심으로 걸어오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여느 ‘소외된 인간’ 시리즈와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헬렌 켈러가 훌륭하게 ‘장애’를 극복했다는 것만 알지 암흑 속에서 그가 보내야 했던 침묵의 시간들이 얼마나 깊은 심연이었는지, 손을 더듬어 얼굴을 확인해야 했던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를 둘러싼 침묵의 켜가 얼마나 더 두터워졌을지는 가늠이나 한번 해보았던가.
이처럼 감동의 도가니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투덜거리고 싶은 게 없는 건 아니다. 테레사 첸과 노년의 남자가 만나는 장면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아름답게 눈물 한 방울 또르륵 흘려보기도 하고 훌쩍이다 코를 풀어본 적도 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문제는, 화면이 너무 조용하고 동시에 극장이 너무 조용했던 것이다. 울음은 ‘흑흑’이 아니라 ‘으엉’ 하고 통곡 수준으로 나오는데 사방천지는 고요했고, 남 눈치 안 보고 맘대로 울기에 나는 너무 소심했다. 결국 연속극 드라마에서 임신한 새댁이 늘 하는 입덧 연기처럼 ‘욱욱’ 하는 입을 틀어막는 데 나머지 시간을 다 소비했다. 그래서 영화에 더이상 집중할 수가 없었단 말이다.
얄궂은 감독님, 다른 ‘이래도 안 울래?’ 영화들처럼 그 부분에서 음악이라도 빵빵하게 틀어주시지, 정말 너무 하셨다. 영화가 끝나고 영 아쉽게 입맛을 다시며 ‘나중에 DVD 사서 집에서 혼자 보며 원없이 울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불현듯 이 영화에 도사린 감독의 음모를 알아차렸다. 어차피 극장에서 흥행하기는 힘들 영화인데 나같은 ‘DVD를 왜 사?’족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DVD 수익이라도 내겠다는 바로 그 깊은 뜻이 이 영화의 결정적 장면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분하고 괘씸하지만 그래도 이번엔 내가 졌다. DVD를 보면서 원없이 울고야 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