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사생결단> 촬영지 부산에 놀러갔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는 바닷가 폐공장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사나운 바닷바람이 부서진 벽 사이로 들이쳤고 숨을 쉴 때마다 먼지가 뿌옇게 끓어올랐다. 매서운 밤공기를 겨우 텐트가 막아주고 있었고, 최호 감독은 조용히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찍는 게 <사생결단>이 아니라 <후아유> 같은 세련되고 조용한 멜로인 것 같았다. 류승범이 간간이 정적을 깨는 농담과 활기찬 걸음소리를 들려줬을 뿐이다. 최호 감독의 취재일지에서 아주 심한 발냄새가 난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얼마나 구두 밑창이 해졌는지 훔쳐볼걸 그랬다. 평단과 관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데도 그는 담담했다. 월드컵 때마다 간헐적으로 겨우 세 작품을 만든 것에 대해 스스로를 가리켜 월드컵 감독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때 윙윙거리며 살을 파고들던 겨울바람보다 최호 감독의 속이 더 독하고 강했던 것 같다. 거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머리 세고, 수줍게 인사를 건넨 사람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단 말인가.
-스티븐 킹의 이야기 중에 적진에 다녀와 보고 들은 걸 말하라는 얘기가 있다.
=<유혹하는 글쓰기> 말인가.
-적진에 다녀온 발냄새가 심하다.
=너무 센세이셔널한 음지의 세계여서 그런가? 사실 뻥도 많다.
-책상에서 쓴 영화가 많은데, <사생결단>은 우리가 알기 어려운 삶의 구석을 발품 팔아 보여주는 쾌감이 있다. 예전 필모그래피와는 좀 다르다.
=어제 개봉파티 때 류승완 감독이 “하나도 안 변한 것 같다”고 하더라. 유일하게 날 알아주더라. 취재해서 인물 만드는 방식은 똑같다. 소재의 연령대가 올라간 거겠지.
-힘들게 취재해 ‘물건’이다 싶은 나머지 너무 흥분한 거 아닌가.
=열광하게 하는 요소는 있었다. 스탭들 자신이 열광하는 소재였으니까. 우리끼리 좋아한 게 맞아떨어져서 좋아한 거지. 황정민도, 류승범도, 김희라 선생도 그랬고 그런 거 없으면 힘들지. 촬영과 조명감독은 오랜만에 빛과 조명으로 뭘 해볼 수 있겠다 싶어 열광했고. 70회차 촬영인데 뒤로 갈수록 분위기가 좋았다. 처음에 임재영 조명감독은 6개월 100회차는 찍어야 한다고까지 했다. 월드컵이 있어서 뒤가 막혔으니 쉬지 못하며 갔다.
-김현석 감독이 독하다는 말을 하더라. 나도 독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부러웠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오나.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한 얘기가 있는데, 자기는 가미카제 식으로 찍는다고 하더라. 매 작품이 마지막인 양 모든 걸 던지고 올인하면서 만드는 자세를 좋아한다.
-최근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 높은 완성도가 돋보인다. 가장 주력한 것은 무엇이고, 잘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나.
=생생함, 거칠지만 사실적인 거. 그리고 누아르적 스타일.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하모니를 이루느냐 하는 거였다.
-쓸 때와 막상 찍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었던 얘기의 의중이 달라질 것 같다. 아, 내가 이런 얘길 하고 싶었구나, 이런 거.
=배우 부분이 제일 컸다. 배우 특성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데 두 열혈 주연이 제안을 많이 하면서 캐릭터에 대해 배웠다. 내가 피상적으로 알았구나 싶었고. 두 배우가 캐릭터의 히스토리와 입체감을 가져왔다. 찍고서야 도 경장(황정민)과 이상도(류승범)가 아, 이런 인물이었구나 했다.
-오현제 촬영감독과 두 번째다. <바이 준>에선 스타일의 경사가 두드러졌는데, 이번엔 이야기와 스타일이 잘 융합됐다는 느낌이다.
=다시 오현제 촬영감독과 작업한 건 불에 같이 뛰어들자, 그런 측면이 있고. 데뷔 때 핸드헬드로 찍었는데 그게 국내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고 보았다. 이번에도 핸드헬드를 많이 간다는 생각이었고 최근 작품들에서 그가 D.I.(색보정 등의 디지털 후반작업)를 몇 차례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 소화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빠르게 카메라를 좌우상하로 움직인다. 컷을 많이 나누어 찍는 것보다 카메라 이동을 많이 한 이유는.
=돌리나 크레인보다 사람 손으로 움직이는 느낌을 원했고, 후카사쿠 긴지의 야쿠자영화 얘기를 촬영감독과 했는데, 징글징글맞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야기를 담는 그릇은 그런 70년대 야쿠자 방식으로 갔으면 했다. 음악도 그런 스타일로 가고자 했고, 색조도 부산이라는 공간을 잘 담아내려 했다. 현대식 건물은 철저히 피했고 부산의 뒷골목에서 주로 찍었다.
-김상범 편집기사에겐 뭘 요구했나.
=경쾌하게 가자는 것. 영화는 무거운 톤이고 징글징글하고 과잉이고 감정의 파고가 들쭉날쭉한데 계속 짓누르기보다는 리듬감을 창조해서 가자고 했다. 속도감있게 관객은 보고 나서 생각하게.
-영화 리듬이 줄기차게 빠르게만 가는 것 같다. 휘몰아친다고 할까. 쉬어가는 틈이 없다.
=쉬는 거나 생각하는 건 영화 끝나고 하면 안 될까? (웃음)
-황정민의 분노에 대해 공감할 겨를이 없었다. 친형 같은 선배가 죽어서라고 얘기하지만, 과연 어떠했기에 그렇게 분노가 클 수 있나.
=황정민 같으면 악몽을 꾸는 신, 류승범 같으면 바닷가 작업실에서 개똥철학을 푸는 신이 있는데 아까 말한 편집원칙으로 하니까 이질적으로 튀었다. 연기는 좋았는데. 황정민이 ‘사리돈’ 먹고 눈물 흘리는 장면은, 아, 이건. (정말 좋았다) 최종까지 갔는데 아니다, 달리자, 튄다, 툭. (최호 감독은 가위질하는 시늉을 했다)
-그는 그저 비리형사도 아니고, 집요하기만한 형사도 아니다. 도 경장에게 어떤 일관성이나 성격을 주려고 했나.
=황정민이 마지막에 앰뷸런스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걸어가는 두컷, 그게 제일 중요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완전히 패배하면 모든 게 쉬워진다’는 구절이 있는데 황정민에게 한번 더 보라고 그 책을 선물했다. 미칠 듯이 끝까지 가봤으나 결국 전보다 못하게 패배했을 때, 그때의 감정이 전달만 되면 중언부언할 필요도, 호소할 필요도 없다고 보았다. 결국 도 경장 자기 자신의 문제고, 자신의 욕구불만과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정체감이 문제다. 누아르에서 중언부언 설명하면서 스타일이 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카페이스> 등의 누아르들이 그렇지 않나. 황정민의 악몽신을 넣었더니 감정의 열기가 식더라.
-감정의 비등점이라 할 만한 건 어디에 설계하려고 했나.
=마지막에 황정민과 류승범이 ‘운명공동체’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웨스턴풍의 기타가 비정하면서도 냉정하게 흐르는 장면인데 친구인 것 같기도 하고 원수인 것 같기도 하고 악어와 악어새의 경계를 넘나드는 마지막 관계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거다. 그 관계 말고는 사실 누아르적인 관습은 ‘꽝’이다. 반전도 대단한 액션도 없다. 그 관계를 보여주는 게 나의 관심사였다. 할리우드랑은 다르다. 마지막 부분에서 차량이 폭파하면서 그제야 본편 시작인 거다.
-화장실에서 여자관객이 ‘잔인하다’란 말을 한다더라. 그런데 난 오히려 더 잔인하고 냉정해야 하지 않았나 했다. 특히 장철(이도경)은 말이다. <프렌치 커넥션>의 악당처럼.
=전형적 악인 같은 게 싫었다. 장철은 냉정한 비즈니스맨이고 철저히 세상의 논리를 꿰뚫어 살아남은 존재다. 냉정을 잃지 않고 사업하는 측면을 강조했다. 최대한 얍삽한 걸 강조하려 했던 거지.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정말 잡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렇게 하면 더 나아질 수도 있겠다.
-시사회 때 마지막에 온주완이 나오던데 일반 극장에서 봤더니 없더라.
=엔딩 크레딧 다 끝나고 다시 나온다. 엔딩 크레딧 나오기 전에 나오는 버전과 크레딧 다 나오고 나오는 버전이 있다. 온주완이 나오는 이유는, 마약시장이 황정민이 말하는 회전목마니까. 빙글빙글 계속 도는 게 키워드니까.
-2.35 대 1의 화면비율이 잘 구현되었다고 보나. 어떤 극장에선 류승범을 소개할 때 자막이 잘려 나온다.
=그 극장에선 왼쪽이 많이 잘렸더라. 나쁜 극장이다. 그러니 도태되지. 내 영화에선 공간이 중요하다. 이 영화의 공간 느낌을 구성하는 데 스펙터클한 사이즈가 중요하다. 핸드헬드 카메라가 수평과 수직을 마구 뒤흔들어대면서 스크린을 뚫고 나갈 듯한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류승범과 황정민이 룸살롱에서 싸우는 장면은 우리에 갇힌 맹수들이 서로 살아나가려 발버둥치는 것 같더라.
=후카사쿠 긴지식의 앵글이다. 세트에서 찍은 건데 프라이드 격투기 경기를 보면 그라운딩이라고 있다. 바닥에서 뒹굴며 싸우는 거지. 이번 액션은 캐릭터의 액션으로 가자고 했다. 합을 정확하게 짜지 않고 배우들과 만든 것이다.
-류승범의 부산 사투리에 대해 부산 출신 사람들은 부산 사투리가 아니라고 하더라.
=황정민 것도 부산 사투리는 아니다. 초반 20∼30% 찍다가 사투리 문제는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하자고 했다. 마산 사람도 경주 사람도 부산으로 올 수 있는 건데 여기 함몰되면 밑도 끝도 없는 거다. 류승범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중요한 건 캐릭터다. 나도 서울 사람이다. 온주완(유성근)과 정우(김 형사)는 부산 출신이라 아파트에서 4개월간 배우들이 합숙하면서 도움을 받기는 했다.
-마약 관련 전문 속어를 관객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자주 반복하면 학습 효과가 생기지 않나.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듣는 대로 가는 거다. 나도 취재할 때 못 알아듣고 두세번씩 질문하고 그랬다. 뉘앙스나 느낌을 받아들이면 된다. 처음 취재하는 날 ‘물’을 못 알아들었다. 대화의 흐름 속에서 마약이란 걸 알게 되었는데 그런 흐름에서 이해하는 게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추자현(지영), 신정근(고 계장) 등 조연들 활약이 두드러진다. 김희라 선생과의 작업은 어땠나.
=김희라 선생 대사가 편집에서 조금 날아갔다. 난 리얼하게 가는 것 같아 김희라 선생 연기가 좋았다. 마약 중독자에게 가장 많이 오는 게 간경화, 당뇨 같은 거다. 마약에 찌들었다가 나온 캐릭터라면 김희라 선생의 연기가 더 리얼하고, 그게 내 목표였다. 대사가 날아간 게 아쉽다.
-장산곶매에서 활동하며 <닫힌 교문을 열며>의 조감독을 했는데, 그런 젊은 날에서 지금 최호 영화로 이어지는 맥이라면 무엇이 있다고 할 수 있나.
=내가 85학번인데 당시 총학생회 문화부장이었다. 영화과로 진학했지만 당시 대학인의 성향에서 현실문제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문화적 흐름으로 이어졌고 영화로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집에는 대학원 간 셈 치고 도와달라고 손을 벌렸다. 그때 활동이 내가 취재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데 영향을 준 것 같다. 노동자들, 비전향 장기수들을 만나며 일상 속에서 영화적 고민을 했다. 취재가 좋다는 걸 그때 알았다. 책상에서 완성해내는 감독들 보면 부럽다. 난 왜 그 재능이 없을까. 난 소재를 직접 가서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안 굴러간다.
-오히려 장산곶매적인 측면보다 인간 관계와 인간의 어두운 이면에 관심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이 준>이나 <후아유>를 보면.
=두 작품 망하고 나니 이 현실이 개탄스럽다. 다른 걸 내가 보여줄 수가 없었으니까. 왜 이번에 변했느냐고 하는데 몇 작품 못해봐서 그렇다. 1년에 1편씩 만들었다면 내 다른 측면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심보경 이사와 두 번째 작품인데, MK픽처스는 매번 프로듀서가 현장을 지키고 있다. 능률이나 분위기 면에서 어떤가.
=감독을 컨트롤한다는 모양새는 아니다. 스탭들과 현장의 노동강도를 같이 겪는 거다. 좋은 마인드다. 어차피 마케팅도 현장에서 시작하는 거다. 현장이 어떤 고민으로 가는지 잡아내야 좋은 마케팅을 할 수 있다.
-월드컵 열릴 때마다 영화를 한다면 대개 지쳐 나가떨어질 것 같다. 집요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준 건 뭐였나.
=완전히 패배하고 나면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했던 헤밍웨이를 읽으며 버텼다. (웃음) 그 기간에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바쁘게 지내는 것보다 그런 시간이 좋다. 영화보며 살고 싶었고. 행복했다. 비디오 가게 작품들 섭렵하고, 파리에서 공부하며 봤던 영화를 회상할 시간도 있었고. 어려서부터 영화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전형적인 영화과 코스를 밟았으니 어떤 방식이든 영화로 삶을 풀어내는 것 외에는 옵션이 없었다. 이게 업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가는 거다. 좋은 영화를 볼 때면 저런 영화를 나도 만들 수 있다고 희망을 가져보는 거고. 그 순간들이 힘을 주는 순간이다. 아직은 저런 좋은 영화를 나도 만들 수 있다며 영화적으로 암울함을 해결하는 거다. 영화가 약인 거다. 처절하게 깨져서 당시엔 당황했다. 장난이 아니구나. 세상이 늪 같구나. 그런 심정이 영화에 반영될 수밖에. 취재하면서 많은 에피소드들이 가슴에 와닿았다. 어딜 가도 악어와 악어새 관계가 아니겠나. 그래서 더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