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구타유발자들> 언론에 첫 공개
2006-05-16
글 : 오정연

정형화된 관계와 반응에 길든 이들은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 사정없이 무기력해진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홍보 카피로 내세워 도시인의 알량한 불안을 여지없이 이용하는 영화 <구타유발자들>이 지난 5월15일 기자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젊은 제자 인정(차예련)을 벤츠에 태워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온 음대 교수 영선(이병준)은 인적이 드문 강가에서 모종의 작업을 시도하다 심상찮은 이들과 맞닥뜨린다. 군대에서 심한 구타를 당해 청각과 지능에 문제가 생긴 오근(오달수), 순박한 얼굴 밑에 짐승 같은 폭력성을 감춘 봉연(이문식), 나사가 풀린 표정으로 일관하다 봉연의 말이라면 무조건 듣고보는 고교 퇴학생 홍배(정경호)와 원룡(신현탁)으로 구성된 동네 토박이들은 덜 익은 삼겹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켜면서 자신보다 약한 고등학생 현재(김시후)에게 끔찍한 폭력을 행사한다. 결정적으로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자신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늘어놓는 외지인의 거짓말. 한번 시작된 폭력의 굿판은 모든 것이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올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여덟명의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완벽하게 악하거나 선한 사람은 없는 가운데, 굳이 영화의 주인공을 꼽는다면 이들 모두에게 번갈아 빙의하는 소름끼치는 광기, 그 자체다. 이는 보기 드물게 완벽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 속 모든 등장인물들의 호연에 힘입은 결과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동네 불량 경찰로 출연하여 막판 반전을 책임진 한석규다. 적은 비중의 역할이지만 <넘버 3.> 이후 가장 인상적인 악역을 소화했다는 것이 주된 평가다. 사람좋은 첫인상과 대조되는 거친 입버릇과 극단적인 폭력성향을 소름끼치게 소화한 이문식과 나사빠진 표정으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광기어린 바보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선보인 오달수는 익숙한 자신들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변주하여 사실감을 더했다. <알포인트>, 드라마 <단팥빵> 등에 출연했고 최근 <달콤, 살벌한 연인>의 건달 연기로 주목받았던 정경호, <싸움의 기술>과 드라마 <들꽃>으로 얼굴을 알린 신현탁의 콤비플레이도 인상적이다. 각각 <여고괴담4-목소리>와 <친절한 금자씨>에서 예쁘장한 외모로 눈길을 끌었던 차예련과 김시후는 순진한 듯 영악한 음대생과 연약한 듯 질긴 고교생을 통해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구제불능의 느끼한 속물 음대교수를 천연덕스럽게 받아들인 이병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패션 70s> <남자가 사랑할 때> 등 드라마,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이후 몇 편의 영화 속 단역, 다수의 뮤지컬에서 활약했고 실제 백제예술대학 뮤지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발>로 데뷔한 원신연 감독은 자신의 두번째 장편영화를 통해, 형식을 제한함으로써 내용 역시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하는 두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긴장을 조이고 풀어주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쉴새없이 위치를 뒤바꾸는 과정 역시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눈살 찌푸려지는 폭력 속에 정체불명의 불편한 유머를 곳곳에 감춘 솜씨도 돋보인다. 두세대의 카메라를 능란하게 운영하고, 블리치 바이 패스 등의 필름 현상과 DI(디지털 색보정) 등의 후반작업을 통해 영화의 스산한 톤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것은 단편 때부터 <가발>까지 원신연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김동은 촬영감독의 몫이었다.

피학과 가학, 호의와 악의, 친절과 폭력 등 대립되는 듯 보이는 것들의 양립을 통해 이 사회와 현대인의 양면성을 드러낸 <구타유발자들>은 여러모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원치 않는데도 자꾸만 뒤돌아 곱씹게 되는 악몽처럼,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 도발적인 영화가 지닌 최고의 매력이다. 5월31일 개봉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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