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얼굴을 맞댄 형사와 용의자, <조용한 세상> 촬영현장
2006-05-27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두 남자가 카페에 앉아 있다. 가죽점퍼를 입은 남자는 공격적이고, 긴 외투를 입은 남자는 의아해하는 눈치다. 김 형사(박용우)와 사진작가 류정호(김상경). 김 형사가 묻는다. “류정호씨, 한국엔 언제 오셨죠? 부모님은 안 계시고… 17살 때 미국 유학, 현재 사진작가로 활동 중… 근데 한국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류정호가 냉정하게 반문한다. “뭘 알고 싶으신 거죠?” 김 형사가 피에로 인형사진을 꺼내 들며 추궁하고, 류정호는 기분 나쁜 표정이 역력하다. “컷!” 조의석 감독의 사인이 떨어진다. 그러자 김 형사는 박용우로, 류정호는 김상경으로 바뀐다. 대학 동기 사이인 두 사람. 박용우는 낮은 저음으로 “당신이 죽였지? 죽였잖아?”라며 김상경에게 농을 걸어댄다. 김상경은 예의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아는 얼굴들에게 인사하기 바쁘다. 5월2일 햇빛 좋은 북한산 자락의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카페. <조용한 세상>(제작 LJ필름, 감독 조의석)의 짧은 한 풍경이다.

<조용한 세상>에서 사진작가 류정호는 긴 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우연히 수연(한보배)이라는 소녀의 위탁보호를 맡게 된다. 그즈음 소녀연쇄실종사건을 쫓던 김 형사는 피해자가 모두 위탁아동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낸다. 그리고는 수사망을 좁히던 중 수연과 정호에게 초점을 맞추게 된다. 오늘의 촬영분은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두 사람의 대면.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예전부터 얽혀 있었고, 앞으로는 수연을 보호하려는 같은 몫을 나누게 될 것이라고 한다. 김상경은 “정호란 인물이 가진 매력은 뒤에 나오는 반전 때문인 것 같다”고 은근히 반전을 예고하면서 “이렇게 대사가 없는 역은 처음이다. 몸의 연기를 어떻게 해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도 토로한다. 박용우는 김 형사가 “경력 4∼5년차 정도 되는, 현실에 매너리즘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많이 절망하지도 않는 그런 인물”이라며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캐릭터를 틀고 싶었다”고 포부를 밝힌다. 그렇다면 그들 사이에 문제(?)가 된 여자인 수연 역의 한보배는? “초등학교 앞에 가서 촬영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거의 심은하, 김태희급이다. 다코타 패닝? 그 정도는 생각도 안 한다”는 게 김상경의 귀띔. 두 남자 중 누가 더 좋냐는 짓궂은 질문에 곤혹스러워하는 소녀를 보며, 김상경과 박용우는 한참을 웃는다. <조용한 세상>은 현재 40% 촬영을 마쳤고, 하반기 개봉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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