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에 능통하며 연기력이 있는 중년의 남성을 어디서 찾는단 말이냐. <천년학>을 제작하는 키노투의 김종원 대표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천년학>에서 송화와 동호의 의붓아버지 유봉 역으로 출연하기로 했던 김명곤이 느닷없이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의 머릿속을 혜성처럼 스쳐간 얼굴이 있으니, 그것은 그가 월간 <말> 기자 시절 인터뷰 대상으로 만난 적이 있던 임진택(56)이었다.
임진택은 한국 마당극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또 그는 판소리의 달인이며, 문화운동의 큰 일꾼으로 얼마 전부터는 한국민족예술인연합 부회장을 맡고 있다. 임진택은 서울대 재학 시절 김지하의 영향으로 탈춤과 연극을 통해 문화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동양방송(TBC) PD 시절에는 정권진 선생으로부터 <심청가>를 사사받으며 판소리를 익혔고, 81년 해직된 이후로는 연희광대패와 민족극운동협의회를 만드는 등 꾸준히 민족예술운동을 꾸려왔다. 최근 들어서 그는 과천세계마당극큰잔치, 세계야외공연축제, 서울통과의례페스티벌, 전주세계소리축제, 경기실학축전, 가야세계문화축전 등 지역축제를 만들어나가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임진택이 <천년학>에서 유봉 역을 맡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그가 판소리와 연극에 두루 능하기 때문이지만, 영화와의 질긴 인연도 한몫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의 영화 ‘데뷔작’은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1980)이었다. “그전 김영동씨의 음악극 <가객>에서 내가 상여소리를 직접 연기했었어요. 이장호 감독이 그걸 봤는지, 영화에서도 상여소리를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두 장면인가에 나왔는데, 정작 시사회날은 피곤해서 깜빡 졸아서 내가 출연한 장면을 못 봤어요.” 이때 맺어진 이장호 감독과의 친분은 <낮은 데로 임하소서>와 <과부춤>의 각색 작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는 또 대학 시절 탈반 후배인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 시나리오 작업에도 한때 참여했다. “이 영화는 처음에 김지하 형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했는데, 그때 제목은 <판촉>이었죠. 그 각본 작업을 하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결국 나는 포기했고, 훗날 황석영 형이 붙여준 <성공시대>라는 제목을 얻게 됐어요.”
임권택 감독과의 인연도 있다면 있는 셈이다. 나주 임씨 장수공파에 항렬까지 똑같다는 점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라도, <서편제>(1993)는 판소리와 대중과의 만남을 항상 고민해온 임진택에게 매우 반가운 영화였다. 그는 이 영화 개봉 직후 민예총에서 발간하는 <민족예술>을 통해 <서편제>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다. 98년 김명곤이 대본을 쓰고 그가 연출한 ‘완판 장막창극’ <춘향전> 때는 임권택 감독이 직접 공연을 보기도 했다. “정일성 촬영감독님은 <바람불어 좋은 날> 즈음 알게 됐는데, 한 가지 일만으로 평생 매진한다는 게 멋지게 보였어요. 그리고 <천년학>의 원작인 <선학동 나그네>의 저자 이청준 선생은 대학 시절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에요. 사실 이청준 선생의 원작인 <낮은 데로 임하소서>를 각색하기도 했는데, 아직도 인사를 못 드렸네요. 하여간 이들 세분과 함께 예술작업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합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광대가> <흥보가> <수궁가> 등을 부르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쓰고 있는 것은 그의 특기인 <심청가> 중 한 대목인 ‘범피중유’다. “이 노래는 심청이 인당수에 나가는 모습을 그리는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아주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대학 시절부터 따지면 30년 가까이 연기를 펼쳐온 베테랑이지만, 영화로는 사실상 데뷔작을 찍게 된다는 것 때문에 그는 새삼 긴장하고 있다. 그가 주창한 마당극은 관객과 적극적으로 호흡하는 연기를 펼치는 데 반해, 영화는 관객과 철저하게 단절된 상태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탓이다. “카메라도 의식하지 말고, 남도 생각하지 말아야겠어요. 영화 스타가 되려면 싸가지가 없어야겠더라고요. 허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