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불사의 백작, 그의 고독한 사랑, 뮤지컬 <드라큘라>
2006-05-26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오픈런/ 한전아트센터/ 1544-4530

브람 스토커의 소설로 유명한 <드라큘라>가 뮤지컬로 제작돼 한국 무대에 오른다. 체코에서 1995년에 초연됐고 한국에서도 1998년에 공연된 적이 있는 <드라큘라>는 루마니아 흡혈귀 전설에 로맨스와 환생의 스토리를 덧붙여 각색한 작품. 그런 점에서 브람 스토커의 원작보다는 시공을 초월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와 닮은 점이 더 많다.

16세기 중반, 드라큘라 백작은 외침에 시달리는 루마니아를 지키고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야심에 사로잡혀 있다. 수도원을 짓밟은 그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며 피를 향한 갈증에 시달리는 존재가 되리라는 신부의 저주를 비웃지만, 사랑하는 아내 아드리아나가 아이를 사산하고 죽던 날, 그 저주가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살하고자 했으나 죽을 수 없는 것이다. 200년이 지나고 세월에 지친 드라큘라는 성을 찾아온 친척 소녀 로레인과 사랑에 빠진다. 순진한 로레인은 오빠의 충고를 무시하고 연인을 쫓아 피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다시 수백년이 지난 현재, 로레인을 향한 사랑마저 식어버린 드라큘라는 런던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며 영원한 세월을 저주하고 있다. 카지노를 털고자 지하실에 숨어든 깡패 닉은 아드리아나의 초상화를 보고 그녀와 닮은 여자친구 산드라를 이용하여 드라큘라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다. 그러나 산드라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드라큘라의 진심어린 눈길에 마음이 흔들려 닉의 음모를 폭로한다.

<드라큘라>는 러브스토리라는 점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뮤지컬이다. 아드리아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 수백년을 홀로 견디는 드라큘라는 동양과 서양 관객 모두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로맨틱한 인물이다. 그러나 중세와 근대, 현대로 배경을 바꾸는 시대적인 설정은 드라큘라의 사랑과 함께 불사의 존재가 지닐 수밖에 없는 피로와 고통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중세의 히어로인 드라큘라는 초현대적인 시설이 들어찬 카지노의 지하 연구실에서도 수백년 전의 의상을 입고 아드리아나의 초상화만 바라본다.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속세에서, 홀로 못에 박힌 도마뱀처럼 박제된 존재가 드라큘라인 것이다. 그를 둘러싼 피의 천사들과 세명의 흡혈요정 또한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드라큘라의 고독을 돕는다.

세 가지로 구분된 시대적인 배경은 고딕풍으로 기대하기 쉬운 <드라큘라>에 역동적인 변화를 불어넣는 요인이기도 하다. 장엄한 중세의 전쟁과 죽음, 화사해진 드레스의 색채로 대변되는 근세, 가죽옷과 오토바이가 난무하는 현대. <드라큘라>는 그에 맞추어 무대와 음악을 바꾸지만, 서정적인 테마는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세상과 불화하는 드라큘라의 비극을 강조한다. 초연에서 드라큘라 역을 맡았던 신성우와 <말죽거리 잔혹사> <신석기 블루스>의 이종혁,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신성록이 번갈아 드라큘라를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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