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에서 바라본 5월은 스산했다. 순제작비 46억원, 총제작비 70억원의 <국경의 남쪽>은 전국관객 30만명이라는 참담한 결과에 고개를 숙였다. 연기력과 관객 동원력을 모두 갖춘 드문 배우로 평가되는 차승원의 기용과 공신력있는 제작사 싸이더스FNH가 가세한 대작 <국경의 남쪽>의 참패는 충무로에 파문을 일으켰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국경의 남쪽>은 차승원이 연기했고 세련된 신파의 요소가 있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이 잘될 것이라 생각했고 개인적으로도 이런 흥행 실패는 뜻밖이다. 탈북자라는 소재의 이미지가 아직은 대중성이 없는 것 같다”고 평했다. 충무로의 한 관계자는 “탈북자라는 소재가 부담스럽다는 거부감과 ‘TV에서 보던 탈북자 이야기와 다른 면모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불만족이 엉뚱하게 맞물리면서 <국경의 남쪽>은 침몰했다”고 말했다. 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는 “장르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재 정통 멜로나 서정적 멜로는 버티기 힘든 분위기다. 캐릭터를 강조하거나 로맨틱코미디만 겨우 살아남는 분위기”라며 “코미디나 액션 대작으로 관객이 몰리는 장르 편중 현상이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배급 시기 잘못 잡았다는 지적
또 다른 내부적 패착은 배급 시기였다. 5월11일 개봉을 계획했던 <국경의 남쪽>은 급작스럽게 5월4일로 개봉을 앞당겼다. 이로 인해 각각 200만명 이상을 불러모은 <맨발의 기봉이> <사생결단>과 정면충돌했고, 3일간 164만명을 동원한 <미션 임파서블3>가 극장가를 휩쓸면서 <국경의 남쪽>은 사면초가에 놓였다. 결과론이지만 이는 “배급 전략의 실패”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듯하다. 내부에서 논의했듯이 “영화 내용을 고려해 가을 개봉을 택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었다. 물론 “올해 10편 내외의 영화를 내보낼 거대 제작사 싸이더스FNH 입장에서는 라인업 때문에 <국경의 남쪽>의 개봉일자를 원하는 대로 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충무로의 관측도 있다.
한편 <국경의 남쪽>의 흥행부진을 부른 외적 조건에 대해 업계에서는 “일단 개봉하는 영화가 너무 많다”고 입을 모은다. 한맥영화 김형준 대표는 “연초 우회상장을 통해 충무로에 유입된 자본이 급격히 제작편수를 상승시켰고, 그로 인한 과잉 제작의 여파가 서서히 극장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이 극장가를 양분했던 2005년 4월의 전개와 비교해도 올해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사생결단>을 제작한 MK픽처스 심보경 이사는 “영화별로 기본적인 스크린 수를 확보하기가 너무 힘들다. 제작편수가 급증하며 한국영화끼리 경쟁하는 양상이 심화됐다. 게다가 제작비가 2억달러에 육박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한정된 국내관객을 놓고 다투는 이중고도 한몫했다”고 밝혔다.
7월 이후 쿼터 축소되면 극장잡기 초비상 예상
스크린 수 확보가 어려워짐에 따라 개별 영화의 상영 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마술피리 오기민 대표는 “갈수록 개별 영화의 상영 상황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올 초 <왕의 남자>의 흥행으로 스크린쿼터 일수를 상당수 채운 극장쪽은 흥행이 부진한 한국영화를 쥐고 버텨야 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7월부터 스크린쿼터 일수가 축소되면 가차없이 종영하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미션 임파서블3>와 <다빈치 코드>로 뒤덮인 멀티플렉스의 전광판은 이러한 암울한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이런 상영조건의 악화는 투자·배급 시장의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결정과 연동된다. 바른손 최재원 영화사업본부장은 “배급사의 작품 선택이 관객의 요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다. ‘관객이 이런 영화를 바랄 것’이라는 제작사의 기획의도보다는 ‘이 정도 시나리오, 캐스팅이면 펀딩받을 수 있겠지’라는 펀딩 자체를 위해 아이템이 개발되는 상황이 본질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거시적으로 보면 <국경의 남쪽>은 한국 영화산업이 어느 때보다 냉엄한 시장논리의 칼날 위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증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2, 제3의 <국경의 남쪽>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상생의 논의와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