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포세이돈> 도쿄 기자회견
2006-05-31
글 : 손주연 (런던 통신원)

34년 만에 부활한 물의 악몽

<타워링>과 함께 1970년대 재난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포세이돈 어드벤처>가 34년 만에 돌아왔다. 여객선 포세이돈이 침몰하면서 벌어지는 대탈출극 <포세이돈>은 <특전 U보트>와 <퍼펙트 스톰>으로 물을 소재로 한 영화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준 볼프강 페터슨이 1억5천만달러를 들여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오는 5월31일 국내 개봉을 앞둔 <포세이돈>의 기자 간담회가 지난 5월17일 일본 도쿄 롯폰기 하얏트호텔에서 있었다. 볼프강 페터슨 감독과 주연배우 조시 루카스, 커트 러셀, 에미 로섬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일본을 비롯해 중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 5개국에서 온 300여명의 기자단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기자 간담회가 시작되자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커트 러셀이 제일 먼저 등장했다. 다음은 참가한 기자단으로부터 “영화에서보다 실물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평을 들은 조시 루카스. 커트 러셀과 어깨동무를 하며 우애를 자랑한 그에 이어 얼굴을 비춘 이는 <오페라의 유령>과 <투모로우>를 통해 재능을 인정받은 에미 로섬이었다. 이 영화가 “할리우드식 재난 블록버스터가 아닌 극사실주의영화”임을 강조한 볼프강 페터슨이 마지막으로 입장하면서 기자 간담회는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다음은 이들 네사람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

“물의 공포를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아시아 기자단에 가장 많은 질문공세를 받은 이는 감독 볼프강 페터슨이었다. 기자들은 그에게 <포세이돈>의 제작 경위에서부터 세계관의 변화 등에 대해 물었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리메이크하기로 한 이유가 있나? <타워링> 같은 영화도 아니고.
=<타워링>은 물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다. (웃음) 나는 물이 좋다. 물을 쓰는 영화는 이번이(3번째) 마지막일 거다. 물이 초래하는 공포를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포세이돈>은 물과 대결하는 사람들의 영화지 재난에 대한 영화는 아니다.

-배가 원작과 많이 다르다.
=배 자체도 캐릭터였기 때문에 묘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조시 루카스가 조깅하는 장면과 배가 전복되는 초반 2분의 그래픽 장면에 14개월이 걸렸다. 원작은 마지막 운항 중인 배였기 때문에 낙후한 모습이었다. 이 배는 원작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다.

-<특전 U보트>의 허무적 정서와 최근 작품 속 캐릭터에서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느껴진다.
=<특전 U보트>는 2차대전의 상흔이 남았을 때 만들어선지 비장함이 깔려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삶의 철학도 바뀌더라. 생사는 어떤 예측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리처드 드레이퍼스가 자신이 연기한 리차드를 죽일 것이냐고 물었다. 그때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자살하려다 엄청난 파도를 봤을 때 이미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을 테니까, 그는 꼭 살려야 했다.

-커트 러셀이 연기한 로버트 램지가 소방관 출신의 전 뉴욕 시장이라는 데서 미국식 영웅주의가 느껴진다.
=절대 아니다. 이 영화에는 전통적인 영웅이 없다. 조시 루카스는 사람들이 탈출하려는 자신을 따라 나서자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을 느끼게 된 거지 처음부터 영웅이 되려던 것은 아니다. 커트 러셀의 행동도 딸을 살리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차기작으로 생각해둔 작품이 있나.
=인간과 외계인의 전투를 다룬 어린이용 소설 <앤더의 게임>(Ender’s Game)의 영화화를 추진 중이다.

“제니퍼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는 인물이다”

<투모로우>로 재난영화의 헤로인이 됐던 에미 로섬은 이혼한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뒤, “덥다”며 손부채질을 했다.

-재난영화에 연이어 출연하는 이유가 있나.
=시나리오를 쓰나미 직후에 받았다. 짧은 시간 동안 삶과 죽음이 나뉘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게 많았던 때였다. 제니퍼는 어리지만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어 마음에 들었다.

-원작은 봤나.
=일부러 보지 않았다.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고 싶었다. 대신 허리케인 카트리나나 쓰나미 관련 비디오를 보며 현실감을 키웠다.

-<포세이돈>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살아남는 쪽에 있을 것이다. (웃음) 나라면 탈출을 시도할 거다. 중·고등학교를 사이버학교에 다녔다. 어려서부터 도전하는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미스틱 리버>에서도 인상적인 부녀관계를 보여줬다. 이번도 그렇고. 실제 부녀관계는 어떤가.
=아버지보다 어머니와 더 가깝다. 두분은 내가 어렸을 때 이혼했고, 나는 줄곧 엄마와 살았다. 물론 아버지와도 잘 지내긴 한다. 어머니는 사진작가고, 아버지는 은행원이다. 어머니에게서 예술적 기질을 물려받은 듯하다. 커트 러셀과 숀 펜은 영화계에서 멘토 같은 존재다.

“딜런은 이기적이지만 재난을 겪으며 성숙한다”

조시 루카스는 시종일관 시원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돋웠다. 그는 다음에는 베드신이 많이 들어간 로맨스영화를 해보고 싶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포세이돈> 출연 결정 이후 집에서도 숨 참는 연습을 했다고 들었다.
=물속에서 숨쉬는 기술과 물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했다. 긴 시간 동안 수영해야 했으니까. 불이 난 물속을 다이빙해서 들어가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감독이 내가 숨을 오래 참지 못하면 장면을 나눠가야 하는데 그러면 재미가 없다며 롱테이크로 가자고 했다. 물론 나도 동의했고. 그러니 연습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딜런의 캐릭터에 공감하나.
=그는 매우 이기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재난을 겪으면서 좀 나은 사람이 된다. 실제 나도 배를 탔다가 폭풍우를 만나 힘겹게 살아난 경험이 있다. 그때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배웠다. 나 역시 좀더 나은 사람이 된 거 같기도 하고. (웃음) 그래서 딜런에겐 큰 공감이 간다.

-실제로 보니 멜로영화에 더 어울리는 외모 같다.
=앞으론 베드신 많이 나오는 영화를 하고 싶다. (웃음) 하지만 다음 작품은 <누가 대니얼 펄을 죽였는가?>(Who killed Daniel Peal?)다. 인터넷으로 참수당하는 모습이 공개됐던 대니얼 펄의 죽음을 캐내는 미국 기자의 이야기다.

“익사하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다”

젊은 배우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자신의 일이라고 말하는 커트 러셀에게서는 연기 경력 45년차 베테랑의 여유가 묻어났다.

-액션 영웅을 주로 연기하다 <드리머> 이후 진한 부성애를 보여주고 있다. 연기 철학이 바뀌었나.
=연기 철학이 아니라 내 나이가 변해 그렇다. (웃음) <드리머>에서 다코다 패닝과 연기하면서 떠오르는 젊은 배우들을 도와주는 역할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뿌듯하기도 하고, 보람있기도 하고.

-<포세이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내가 몸을 떨며 익사하는 장면. 관객에겐 심리적 중압감을 주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 우리는 익사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 있어서 아무리 스크린이라도 익사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는 건 힘이 든다. 그러니 연기하는 나는 어땠겠나.

-경력 45년차인 당신에게도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당신이라면 더 잘했을 것 같은 배역이 있나.
=실제로 TV나 영화를 보며 ‘내가 하면 더 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것이 내가 9살에 영화에 데뷔한 이유다. 사실 그런 생각은 나를 피곤하고 지치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다른 작품들을 그냥 즐기는 법을 배웠다. 물론 내가 고사한 배역이 있는 영화를 볼 땐 ‘내가 만약…’이란 상상을 하기도 한다.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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