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하겠다. 한번 정도는 괜찮겠지요? 자, 그럼 시작.
필자는 <다빈치 코드>를 아직까지 읽지 못했다. 그렇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읽었고, 또 이 글이 나갈 때쯤 되면 다들 보고 있을 것이기도 한, 그 유명한 소설 <다빈치 코드>를 아직까지 읽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오늘 저녁 뉴스를 보니, 한국기독교총연합에선 법원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기각에도 불구하고 <다빈치 코드> 안 보기 운동을 계속해서 전개해나가겠다는 결의를 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필자는 기독교계로부터 본의 아니게 칭찬받을 일을 한 셈이 된다. 일이 이렇게 되니, 지금까지 대화에서 소외당하는 일을 심심찮게 겪으며 거의 사회 부적응자 비슷한 반열에까지 오르면서도 이 소설을 읽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온 것에 대한 보상을 본의 아니게 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훈훈해지기까지 하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이 소설을 읽지 않은 것에 종교적인 동기 같은 건 물론 없다. 이건 순전히 필자의 고질적인 베스트셀러 안 사기 습성 덕분인데, 뭐 딱히 베스트셀러는 문화적 쓰레기에 불과하니 절대로 사지도 읽지도 않겠다는 등의 비장한 결의를 한 것은 아니고(그럴 리 있겠는가?) ‘베스트셀러라면 분명히 내 주변에도 책을 살 사람이 생길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고 견디면서 버티자’라고 하는, 냉엄한 현대사회에선 전혀 적합하지 아니한 목가적이고도 안이무쌍한 생각을 일삼고 있을 뿐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물론 버티기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고, 필자는 결국 <다빈치 코드>의 시사회를 기다리는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머지않아 친구들의 대화에 정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겠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말이다. 내 참 그럴 거면 차라리 그냥 책을 사보고 말지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기다린 게 아까워서 오지도 않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려본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문제가 간단치만은 않다는 걸 알 게다. 어쨌든 그런 사연을 안은 채 필자는 대기모드에 돌입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이 영화만큼은 시사회에 대한 소식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그리하여 현재 필자는 결국 이 영화의 개봉만을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안 사고 버티기에 대한 결의와 사교계 복귀에 대한 희망을 꾸역꾸역 다지며 말이다.
그러니 기독교 관계자 여러분께선, 필자와 같이 긍휼한 처지의 사람도 있다는 것을 모쪼록 감안하셔서, <다빈치 코드> 안 보기 운동은 재고하셨으면 하는, 그게 도저히 안 된다면 그 운동을 부디 좀 살살해주셨으면 하는 목소리에 귀기울여주셨으면 한다. <영웅본색>을 보고서도 총잡이가 되지 않았고, <파업전야>를 보고서도 여태 공산혁명하지 않았으며, <거짓말>을 보고서도 여전히 사도마조히즘(SM) 취향에 물들지 않은 이 가엾은 한 마리의 어린양의 목소리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