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쿨한 여자가 천국에 간다
2006-06-07
글 : 이종도

*본지 <ME>와 천국의 시사 프로그램 <웰컴 투 시사 헤븐>의 논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비슷할 이유도 없음을 미리 밝힌다.

앵커하리: 천국행 비자 얻으려 애쓰시는 시청자 여러분, 이미 천국행 비자 얻어 기쁜 시청자 여러분 가끔 안녕하시죠. <웰컴 투 시사 헤븐>의 앵커, 앵커하리입니다. 오늘도 첫 소식은 꽃미남 마초무 기자가 준비했습니다.

마초무: 최근 급증하고 있는 나쁜 여자들의 천국행 러시 소식인데요.

앵커하리: 듣는 나쁜 여자 기분 나쁘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한데요. 쿨한 여자로 통일하죠. 쿨한 여자들이 천국도 접수한다는 풍문이 증권가에 도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닌데 말이죠.

마초무: 천국의 문호 개방이라는 측면에서 환영하는 게 대세지만 이로 인해 천국 쿼터가 상대적으로 더욱 좁아진 마초들 반발이 거셉니다. 한편 원조급 ‘쿨녀’인 ‘마녀’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최근의 천국 문호 개방을 소급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항의하고 나섰습니다.

앵커하리: 그런데 지옥쪽에서는 그분들을 내보내기 싫어한다면서요.

마초무: 네, 그렇습니다. 그러잖아도 지겹고 따분한데 그녀들마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지옥이 운영되겠느냐는 푸념을 하고 있습니다. 쿨한 여자들의 전성시대입니다. 그런데 쿨한 여자들의 속셈은 다릅니다.

앵커하리: 어떤 속셈인지요.

마초무: 천국에 입성해서 아예 천국을 발칵 뒤집고 새롭게 천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앵커하리: 요즘 세상 돌아가는 얘기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할리우드와 충무로 등등 쿨한 여자들 캐릭터가 대세라는 주장이 있어요.

<달콤, 살벌한 연인>의 미나
<시카고>의 벨마

마초무: 그렇습니다. 사실 ‘쿨녀’들도 굳이 천국으로 오겠다는 의사는 없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는데 꼭 천국일 필요는 없다는 견해인데요, 하지만 쾌적한 환경, 안정적인 애인 공급, 어리석은 척 남자 부려먹기 쉬운 천국의 조건 등 여러모로 천국이 선호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앵커하리: 나쁘다는 말을 옥스퍼드와 브리태니커, 웹스터 사전 편찬위원회 등에서 세련되다, 쿨하다, 자기에 충실하고 합리적이다, 이런 뜻으로 개정할 예정이라죠?

마초무: 네,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괜히 남 위하는 척 위선 안 떨고, 남자들에게 기죽어 지내지 않고, 기존 질서보다는 자기가 만든 질서를 더 중시한다는 치크, 쿨, 고저스 등과 동의어로 쓰고 있습니다.

앵커하리: 이런 경향을 잘 드러내주는 곳이 할리우드죠. 장사가 되니까 쿨한 여자들이 주인공이 되는 거겠죠?

마초무: 네, 쿨한 여자들이 주름잡는 할리우드 자료 화면 보시겠습니다.

할리우드도 쿨한 여자의 것

“쿨한 여자들이 속속 천국 입장권을 확보하고 예약함으로써 천국마저도 쿨한 여자들이 점령했다. 할리우드는 쿨한 여자들의 세계 정복사를 보여주는 잡스러운 승리의 기록장이기도 하다. 쿨한 여자들이 활개를 치는 곳은 방송계, 출판계 등 장르 불문이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말 잘 듣는 고분고분함보다는 철없는 선생님을 유혹했다가 싫증나면 버리고, 편파적으로 정의를 숭상하는 선생님을 학교 밖으로 쫓아내고 마침내 명문대에 입학하여 유명 정치인과 안면까지 트는 데 성공한 <일렉션>의 트레이시(리즈 위더스푼)는 쿨한 여자들의 입김이 얼마나 세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앵커하리: 저런 케이스를 예전엔 싸가지 없다고 했는데 이제는 진취적이라고 말하죠? 그런데 트레이시의 천국 입장 여부는 아직 심사위원회가 결정을 못 내렸죠?

마초무: <투 다이 포>의 니콜 키드먼 등과 함께 너무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게 꼴불견이라 입국이 거부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트레이시가 입국 심사위원들을 성적으로 유혹해 입국을 보장받았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앵커하리: 배신 때린 남편과 아이들을 죽였던 그리스 비극 <메데아>의 메데아, 남편의 국왕 살해를 부추긴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맥베스 부인이 트레이시의 변호사로 나섰다고도 하던데요. 강력하고 자기 주장 강한 여자들을 옛날 작가들은 너무 무서워해서 쉽게 마녀로 몰아갔는데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마초무: 네, 그렇습니다. 진취적이고 활달한 쿨한 여성들은 ‘좋다, 착하다’에 들어 있는 순진함, 복종, 고분고분함 등이 좋기는커녕 여성의 자기 독립과 성장, 자기 성취를 가로막는 것이라며 ‘나쁜 여자’의 뜻을 개정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씬 시티>의 미호
<원초적 본능2>의 캐서린 트라멜

앵커하리: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천국의 성별 분포도 많이 바뀌었어요. 여성이 과반수를 넘어서고, 이미 천국에 있던 많은 마초들과 남성중심주의자가 여자 등쌀에 밀려났죠?

마초무: 네, 맞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쿨한 여자들이 천국의 주도권을 잡았는지 할리우드 사례로 마저 살펴보겠습니다.

천국 최강의 공영방송 시사 <웰컴 투 헤븐>에서는 최근 천국에 들어오는 여성의 분포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기존에 천국에 들어온 기성 여성 세대와 신세대 여성이 혈액과 유전자에서도 심각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발견했다. “나쁘다와 착하다의 기준이 바뀐 거죠. 나쁜 놈들은 죽어도 싸다, 이거죠”(<시카고>의 벨마(캐서린 제타 존스)), “돈을 운반해달라고 하는 남자들의 돈을 가로챘어요. 눈 먼 돈이 나쁜 남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나에게 오는 게 내게도 돈에게도 행복한 일 아닐까요?”(<재키 브라운>의 재키 브라운(팸 그리어))

앵커하리: 저분들 등 뒤에 붙은 흰 날개가 인상적이네요. <신 씨티>의 여전사들, <아이스 스톰>의 도라 버치, <아메리칸 뷰티>의 아네트 베닝,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 <투 다이 포>의 니콜 키드먼의 인터뷰도 준비했는데 광고 때문에 잘렸습니다. 저야 저런 개성있고 섹시한 분들 오면 천국이 즐겁죠. 그런데 보수적인 남자 원로들과 일부 여자 원로원이 저들의 천국 입국을 결사 반대하고 있는데요.

마초무: 네. 그러나 늘어난 신세대 여성 인구들은 선구적 ‘쿨녀’들이 남자가 만든 세상을 뒤흔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앵커하리: 섹스와 돈에 대해 남자들이 금지해온 걸 뒤바꿨다는 게 원로원을 열받게 한 건데요.

충무로도 쿨한 여자의 것

앵커하리: 그리고 최근 천국에 대거 들어온 신입회원 국적이 한국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캐릭터를 소화한 분은 지적인 연기로 정평을 얻은 문소리씨죠?

마초무: 네, 그렇습니다. <가족의 탄생>에선 채현(정유미)을 기른 어머니로,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선 남자 위주의 교수 사회를 여왕벌 중심 사회로 바꾼 여교수로 나와 마초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앵커하리: 사실 저분은 <바람난 가족>에서 콩가루 가족의 진실을 전해주신 분이잖아요. 맞바람도 통쾌했지만 고등학생 애인 사이에 아이를 두면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고정관념을 발칙하게 뒤집어놓았어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조은숙
<가족의 탄생>의 채현

마초무: 네, 그렇습니다. 콩가루 가족의 진정한 주인으로 나온 뒤에 <가족의 탄생>에선 유쾌한 콩가루 가족의 어머니로 나왔죠.

앵커하리: 채현이가 경석(봉태규)의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헤픈’ 연애 방식이 상큼했어요. 문소리씨 뺨칠 정도로 발칙한 분이 또 계시다죠?

마초무: 네, 그렇습니다. 네명의 악성 마초들을 살해하고 유유히 싱가포르로 달아난 <달콤, 살벌한 연인>의 미나 역 최강희씨인데요. 스튜디오에 문소리씨와 최강희씨 화상전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소리: 난 애아빠(봉태규)에 대해선 할 말이 없고요. 우리 애가 억압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랐을 뿐이에요.

최강희: 피치 못할 살인을 했다고 제게 돌 던지시는 분들에겐 미안하지만요, 이제껏 모든 도덕이 이기적인 남자들이 만들었다는 걸 먼저 생각해보세요.

앵커하리: 아, 네, 광고가 나가야 될 시간이라서 여기서 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요.

문소리: 남자들, 너희나 잘하세요.

최강희: 남자들, 나 잡아봐라∼.

(광고)
절판되었다가 다시 나왔습니다. <조금씩 못된 여자가 되는 법>
놓칠 수 없는 DVD, <어리석은 척 남자 후려먹기>.

천국보다, ‘어디로든’이 좋아

앵커하리: 쿨한 여자들이 올라와서 천국 땅값 떨어졌다는 내용으로 마초 원로원 데모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마초무: 네, 이브협회에서는 ‘이브 아니면 네가 사과맛을 알았겠니?’라며 반대 데모를 준비 중인데요. 애인을 서른여섯명 두었던 러시아의 여장부 에카테리나 여제, 자신을 겁탈한 친아버지를 살해한 16세기 이탈리아의 베아트리체 첸치, 자신을 배신한 남편과 남편 사이의 아이들까지 죽인 메데아가 시위대에 동참하리란 얘길 듣고 마초 원로원들은 매우 뒤숭숭한 분위기입니다.

앵커하리: 그러잖아도 마초 원로원들이 룸살롱 추행 동영상, 마타하리 비밀 수첩 리스트 적발 등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여자분들이 판촉물 업체에 맡긴 플래카드 문구는, ‘착한 여자는 하늘나라로 가지만 쿨한 여자는 어디로든 간다’죠?

마초무: 네, 그래서 천국이 조만간 ‘천국’과 ‘어디로든’으로 양분될 거라는 관측이 떠돌고 있습니다.

앵커하리: 그래도 이 방송이 폐지될 염려는 없죠? 마타하리가 천국의 갑부들을 모두 매수했잖아요?

존경하는 시청자 여러분 다음 방송이 ‘천국’이 아니라 ‘어디로든’에서 제공하더라도 채널은 고정시켜주시기 바랍니다. 도망가지 마세요. 배신 안 때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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