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누구의 진실을 말하는가, <카포티>
2006-06-07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진실을 원했으나 자신의 진실은 외면한 남자의 초상 <카포티>

작가는 예민한 맹수 같은 존재다. 철창 안에 가둬놓으면 며칠 안 가서 죽어버릴 정도로 예민하지만,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만났을 때는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는 존재. 트루먼 카포티가 그랬을 것이다. 1959년 11월, 카포티는 캔자스 홀컴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해사건을 다룬 기사를 읽고 흥미를 느껴, 어린 시절의 친구인 하퍼 리와 함께 취재를 간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존경받는 클러터 일가가 살해된 홀컴 사건을 보자마자, 카포티는 직감했을 것이다. 이 사건이 당대 미국사회의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그 집 식구들은 여기 사람들이 정말로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는 가치를 대표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하다니… 그건 마치 신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나 다름없어요. 삶에서 의미를 빼앗아가는 거죠. 두려운 것도 두려운 거지만, 그보다는 좌절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아요.’

<인 콜드 블러드>를 통해 트루먼 카포티를 해명하다

혁명의 60년대를 맞이하기 전, 1950년대는 미국사회의 절정이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끝을 모르는 호황이었고, 중산층 가정은 의심의 여지없는 안식처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뿐이다. <플레전트빌>에서 그려진 것처럼, 50년대는 60년대의 갈등을 내면으로 꾹꾹 눌러대고 있었을 뿐이다. 클러터 일가가 살해된 것은, 신화처럼 믿고 있던 50년대의 평화가 무너진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선량한 마을 사람들은 ‘신의 부재’를 느낄 만큼 충격을 받았고 이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범인들이 단 50달러를 빼앗기 위해 그토록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그들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클러터 일가를 죽인 딕과 페리를 ‘냉혈한’이라고 부르면서, 범인들은 결코 그들과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고 믿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두개의 세계로 갈리고 있었다. 아니 이미 양립해왔던 평화로운 보통 사람들의 세계와 추잡하고 잔인한 냉혈한들의 세계는 본격적으로 서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결국, 다 같은 사람이었다.

1965년에 발표된 카포티의 걸작 ‘논픽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범죄를 통해서, 미국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카포티>는 그 소설 <인 콜드 블러드>를 쓰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카포티>는 트루먼 카포티의 인생 전체를 그리지 않는다. 지독하게 힘들었을 것이 분명한 어린 시절 이야기나 <인 콜드 블러드>로 최고의 명성을 얻은 뒤의 이해할 수 없는 쇠락도 그리지 않는다. <카포티>가 보여주는 것은, 트루먼 카포티가 어떻게 <인 콜드 블러드>를 쓰게 되었고, 쓰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하는 것뿐이다. 사건 자체로 보면 단순하지만, <카포티>는 그 과정을 통해 트루먼 카포티라는 인물 자체를 해명한다. 아웃사이더의 면모를 타고났지만, 언제나 중심에서 빛나고자 했던 트루먼 카포티. <인 콜드 블러드>로 찬사를 받았지만, 정작 그 이후에는 화려한 추락으로 일관했던 이유를 <카포티>는 말해준다.

<카포티>는 홀컴 사건이 발발한 것을 보여주고는, 바로 뉴욕 사교계에서 ‘놀고 있는’ 카포티의 모습으로 옮겨간다. 새하얀 피부에 앵앵거리는 목소리의 카포티는, 사교계의 잘난 인사들을 자유자재로 휘어잡는다. 영화로도 대성공을 거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작가로 사교계의 명사가 된 카포티는, 누구도 대적하기 힘든 최고의 스타였다. 친구와 적 가리지 않고 농담과 독설을 마구 퍼붓던 카포티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한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정직해야 한다.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고. 그것은 <인 콜드 블러드>에 대한 카포티의 속마음과 일치한다. ‘정말로 진지한 대작을 쓸 생각을 하고 있어. 그 작품은 소설과 아주 똑같을 거야. 한 가지 다른 점만 빼면, 그 안에 적힌 모든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진실이라는 거지.’ 카포티가 원한 것은 ‘진실한 기록’이었고, <인 콜드 블러드>는 취재한 것의 94%를 기억하는 카포티가 바라본 진실이었다.

카포티와 페리, 그림자와 같은 관계

하지만 ‘논픽션 소설’이라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인 콜드 블러드>는 사건 개요와 수사, 재판 과정만이 아니라 클러터 일가에 대한 기록과 딕과 페리의 개인사까지 파헤친다. 그것은 결국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자기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이다. 카포티는 결코 관찰자로 만족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카포티는 <인 콜드 블러드>의 전지적 작가, 모든 것을 관장하고 때로 온정을 베풀거나 벌을 내리기도 하는 신이다. 공정하면서도 편파적이고, 때로는 열정에 치우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그리스 신화 속의 신 같은 존재. 카포티는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일부에서 <인 콜드 블러드>를 비판하는 이유는, 카포티가 페리에게 너무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카포티는 페리에게 동정을 넘어선 애정을 느꼈고, 그것이 ‘진실한 기록’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 <카포티>는 그 비판에 대한, 하나의 답일 수도 있다. <카포티>는 취재과정에서 카포티와 페리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들의 관계가 단지 책이 아니라, 카포티라는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카포티는, 하퍼 리에게 털어놓듯 말한다. ‘페리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지.’ 카포티는 페리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어떻게 보면, 페리는 가장 끔찍한 살인자다. 페리는 ‘정신이 아주 멀쩡하게 박혀 있지만, 양심이 없고, 동기가 있건 없건 죽음의 일격을 날릴 수 있는 차가운 피를 지닌 사람’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페리에게서 뭔가 슬픔 같은 것을 감지한다. ‘(듀이는) 일종의 동정을 느꼈다. 페리 스미스는 일생 동안 한번도 온실에서 보호받으며 살지 못했으며, 불쌍하고, 추하고 외로운 과정을 겪어 하나의 망상에서 다른 망상으로 옮겨다닌 것이다. 하지만 듀이는 용서나 자비를 줄 만큼 깊이 동정하지는 않았다.’ ‘살쾡이 한 마리가 덫에 걸린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마리는 살쾡이를 풀어주고 싶었지만, 고통과 증오로 빛을 발하는 그 동물의 눈을 보니 동정이 물 새듯 빠져나가고 공포가 밀려왔었다.’ 페리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페리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무작정 그를 동정할 수도 없다. 페리는 자신의 상처를 타인에게 전가한, 끔찍한 냉혈한인 것이다.

하지만 카포티에게 페리는, 그림자다.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한 뒤, 밤마다 어머니가 나갈 때 카포티는 어두운 호텔방 안에서 홀로 울부짖어야 했다. 친척집에 간 뒤에도, 눈에 띄는 외모와 목소리 때문에, 그리고 동성애 기질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았을 것이다. 철저하게 소외된 속에서, 카포티는 자신의 무기인 언어를 갈고닦았다. 어쩌면 그들은 단지 무기가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페리는 칼과 총을 선택했고, 카포티는 언어를 택했을 뿐. 인디언 혼혈인 페리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문학을 좋아했고 누구보다 현명하고 교양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제대로 교육을 받고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라났다면, 카포티만큼은 아니더라도 페리는 무난하게 지성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반면 카포티는 비극적인 과거를 뒤로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을 스타로 만들었다. 사교회장에서, 카포티를 압도할 만한 이는 그 누구도 없다. 카포티는 글을 쓰기도 전에, <인 콜드 블러드>의 수상 소감을 미리 준비하는 인물이다. 카포티는,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 남자다. 그러지 않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의 진실과 직면하지 못한 카포티의 일생

아마도 카포티는 처음부터, 여자 감옥에 조용히 앉아 있는 페리를 본 순간부터, 그에게 끌렸을 것이다. 그들은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기에. 그러나 카포티에게는 더욱 중요한 것이 있었다. 전혀 다른 종류의 글, 논픽션 소설인 <인 콜드 블러드>를 완성하여 명성을 드높이는 것. 아무리 페리에게 이끌려도, 카포티는 자신의 먹이를 내팽개치는 법이 없었다. 딕과 페리의 사형이 계속 연기되었을 때, 카포티는 책을 완성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분노했다. 카포티는, 자기 자신만이 중요했다. 타인들의 편견과 놀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자기 자신을 만들어야만 했다. 자아도취와 독설이 카포티의 무기였다. 그 독설은, 아마도 유일하게 카포티를 이해했던 친구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각색한 영화를 보고 나서도 멈추지 않는다. 카포티에게 다가간 사람들은, 그 고통과 증오에 사로잡힌 눈을 보았을 때는 누구나 돌아섰을 것이다. 페리를 본,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것처럼. ‘나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한탄하는 카포티에게 ‘당신이 원치 않은 것’이라고 하퍼 리가 말한 것처럼, 카포티는 타인을 위해 살아갈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페리에게 이끌려도, 페리가 그랬듯이 누군가를 잔혹하게 내치고 앞으로 나아갔을 사람이다. 페리가 사형집행장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내가 한 짓을 사죄해봤자 아무 의미도 없을 겁니다. 심지어 적절치 못한 행동일 겁니다. 하지만 나는 할 겁니다. 사죄합니다’란 말은, 오히려 카포티에게 필요한 최후진술이었을 것이다.

카포티는 진실이 중요하다고 믿는 작가다. <인 콜드 블러드>가 철저하게 ‘진실한 기록’이어야만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썼을 것이다. 하지만 카포티는 페리와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이 ‘진실’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아닐까. 아무리 자신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도, 결국 트루먼 카포티는 트루먼 카포티일 뿐이라는 것. 과거는, 자기 자신은 결코 외면할 수 없다는 것. 카포티가 페리에게서 본 것은, 자신의 그림자였다. 뒷문으로 나가버린, 자신의 그림자. 하지만 진실하게 카포티를 대한 페리와 달리, 카포티는 페리를 이용했을 뿐이다. <인 콜드 블러드>는 페리의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카포티의 진실은 아니었다. <카포티>는 진실을 원했지만, 결국 자신의 진실과 직면하는 데 실패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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