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추모, 이마무라 쇼헤이
2006-06-13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칸영화제가 끝난 것을 알았던 것일까.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두번 받았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80)이, 지난 5월30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간암으로 별세했다. 이번 칸영화제에서는 켄 로치 감독이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거장의 건재함을 알렸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죽음은 일본영화의 한 시대가 막이 내렸음을 알린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사와 아키라 이후 일본영화의 거장을 꼽는다면 가장 먼저 오시마 나기사와 이마무라 쇼헤이가 떠오른다. 오시마 나기사는 성과 정치의 최전선에서 투쟁했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인간의 생명력 그 자체를 탐구하며, 일본영화의 거친 60년대를 대표했다. 서로 다른 길이었지만, 이마무라 쇼헤이와 오시마 나기사는 각자 일본이라고 하는 사회 혹은 세계의 근원을 치열하게 파고들었던 문제적 감독이었다. 두 감독은 90년대까지 꾸준히 작품을 내놓았지만, 오시마 나기사는 1999년 <고하토>를 연출한 뒤 건강문제로 활동중단 상태였다. 21세기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했던 이마무라 쇼헤이는 9·11에 관한 옴니버스영화 <11.09.01>(02)을 유작으로 남기고 이제 사라졌다. 바야흐로 한 시대가 끝난 것이다.

폭력과 고통 속 인간의 생명력 예찬

이마무라 쇼헤이는 1926년 도쿄에서 내과 의사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와세다대학에서 서양사학을 전공한다. 도쿄 출생에 와세다대학 서양사학과라면 분명히 도회적인 배경을 지닌 것이지만, 이마무라 쇼헤이의 관심은 정반대로 일본사회와 인간의 밑바닥으로 향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오시마 나기사는 사무라이고, 나는 시골의 백성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은 두 감독의 세계관과 스타일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매춘부, 농민, 범죄자, 예인 등 사회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그렸고, 정치적인 발언보다는 그들의 생명력 자체를 그려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오시마 나기사처럼 직접적으로 권력과 싸우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근저에 있는 욕망과 섹스와 폭력과 공포까지 모든 것을 끄집어내 속속들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인간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었다. 억압된 사회에서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폭력과 고통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인간의 생명 그 자체를 예찬한 것이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쇼치쿠 영화사에 입사했다가, 바로 닛카쓰 영화사로 이적한다.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막말태양전>(1958) 등의 시나리오를 써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감독 데뷔작은 이마무라 쇼헤이 특유의 너그러운 인간희극인 <도둑맞은 욕정>(1958)이다. 에너지 넘치는 영상은 데뷔작에서부터 엿보였다. 같은 해에 만든 <서긴자 역전>은 가벼운 희극이고, <이루지 못한 욕망>은 반대로 조잡한 악행으로 돈을 버는 소악당의 물욕과 교활함 등을 무겁게 그려냈다. 다음해에 만든 <오빠>는 규슈의 탄광촌에서 부모 없이 살아가는 재일조선인 4남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형과 누나가 돈을 벌기 위해 타지로 간 사이에, 단둘이 남은 형제가 영영실조에 걸리면서도 꿋꿋하게 살아남는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마무라는 일반적인 영화에서 쓰이는 것처럼, 신파적으로 그들의 비참한 일상을 그려내지 않는다. 결코 동정하거나 연민을 보이지 않는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일체의 감상을 배제하고, 아주 사실적으로 무겁게 묘사하여 극적인 인간찬가를 만들어낸다.

강인하고 생명의 모태인 여성에 주목

이마무라 쇼헤이의 중후한 작풍은 <돼지와 군함>(1961)에서 개화한다. 동네 건달인 긴타는 요코즈카의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구입하여 돼지 사료로 쓸 계획을 세운다. 거저 벌어들이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지만, 조직의 배신으로 긴타는 돼지마저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다. 도덕이나 정의에 구애받지 않는 밑바닥 인생들의 추악한 욕망에서 비롯되는 소동을 역동감 넘치는 영상으로 잡아냈다. 어떤 감정도 없이, 아주 신랄하고 예리하게 그려지는 하층민의 삶이 처절하게 다가온다. <일본곤충기>(1963)는 그런 이마무라 쇼헤이의 ‘인류학적’ 시선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가난한 시골 집안에서 태어난 여인 도메는 애인이 죽어버리자 새로운 삶을 찾아 도쿄로 향한다. 그러나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도메는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가 결국 창녀촌으로 흘러들어간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여자의 전락’을 그리고 있지만, 이마무라 쇼헤이는 도메를 가련한 희생자로 그리지 않는다. 도메는 끈질기게 생존하는 곤충처럼, 강인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여인이다. 도메에게는 땅의 기운이라고 부를 만한, 토착의 생명력이 넘쳐난다. “생명력의 기원인 여성의 대지성을 긍정하는 세계관을 공고히 하여, 근대주의 속에서 일본인이 서서히 상실해가는 근대화 이전의 토속적인 정념의 세계를 나타냈다”는 요모타 이누히코의 말처럼, 이마무라 쇼헤이의 세계관은 <일본곤충기>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그것은 잔혹하면서도 철저한 리얼리즘의 정신이고, 일본적인 근원 아니 인간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또한 <돼지와 군함> <일본곤충기> 등의 작품들은 세트가 아니라 현지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하여, 이후 다큐멘터리에서 더욱 확실하게 그려내는 사실적인 영상의 원천을 보여준다.

<복수는 나의 것>
<일본곤충기>

<붉은 살의>(1964)는 강도에게 범해진 여성이 죄의식에 사로잡혀 자살하려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뒤쫓는 강도에게 살의를 느끼면서 능동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성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상징 하나로 쓰이는 것은, 섹스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에서 섹스는 투쟁의 도구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지고 죽음을 맞이한 뒤 새롭게 태어나는 탄생의 장이다. 이마무라의 영화에서 여성이 가장 강인하고, 세계의 중심이자 질서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곤충의 사회에서 대부분 암컷이 중심에 서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서도 여성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오히려 여성이 억압을 당하고, 더욱더 주변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이마무라 쇼헤이는 바닥에서도 또 주변으로 밀려나는 여성들에게 주목하는 것이다. 오즈나 미조구치가 보여주었던 이상적인 여성이나 가련한 여성이 아니라, 이마무라는 강인하고 생명의 모태인 여성을 보여준다. 현실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결코 현실에 좌절하지 않는, 끝까지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을 찬미한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오가는 활발한 작업

섹스산업에 빠진 남자의 희비극을 끈적하게 그린 <인류학입문>(1966)은 반대로 남성의 측면에서 본 섹스를 그려낸다. 67년에 만든 문제작 <인간증발>은 실종된 약혼자를 찾아다니는 여성을 따라간다. 카메라를 들고 취재를 하는 이와 여성이 상호침투하고, 여성의 생각을 받아들여 카메라로 담아내는 방식으로 이마무라 쇼헤이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렇게 ‘드라마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집대성한 작품은 <신들의 깊은 욕망>(1968)이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62년에 쓰고 연출했던 무대극 <파라지>를 발전시킨 영화로, 일본인의 성의 근원을 가공의 섬에서 발견하기 위해 토속적인 신화세계를 창조한 대작이다. 일본의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오누이의 근친상간 이야기를 바탕으로, 남단의 섬 구라게지마에서 벌어지는 문명의 충돌을 그려낸다. 일본인의 과거, 원형을 지니고 있는 평화로운 ‘야만’의 섬이 문명의 개발에 힘없이 무너져 내리지만, 이마무라는 그것을 비통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통과 패배의 과정을, 생명을 만들어내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원형의 몰락은 분명히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생명은 그 안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게 마련이다.

심혈을 기울인 <신들의 깊은 욕망>은 흥행에서 실패한다. 그리고 이마무라 쇼헤이는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에 열중한다. <일본곤충기>의 다큐멘터리판이라 할 <일본전후사-누더기 마담의 생활>(1970)을 시작으로 <카라유키상> <무호마쓰 고향에 돌아가다> 등을 찍는다. 극영화를 만들 때도 철저한 취재로 악명 높았던 이마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더욱 집요하고 원숙해졌다. 10여년 만의 극영화 <복수는 나의 것>(1979)는 실제로 규슈와 간토 지방에서 5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논픽션 소설이 원작이기 때문에, 이마무라는 취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복수는 나의 것>의 흉악한 연쇄살인범은 단지 무서운 살인자가 아니라 일본사회가 만들어낸, 우리의 주변이 아니라 누구나의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나임을 깨닫게 해준다. 살인자의 욕망은 특수한 개인의 돌발적인 만행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뒤틀린 집단 욕망인 것이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나라야마 부시코>

80년대의 이마무라 쇼헤이는 건강악화 속에서도 <괜찮잖아>(1981), <나라야마 부시코>(1983), <제겐>(1987) 등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찾아다닌다. 그중 고려장 이야기를 그린 <나라야마 부시코>는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다. 89년에 만든 <검은 비>는 마치 수묵화로 그려낸 듯한 담채색의 영상으로 원폭의 공포를 조용하게 묘사한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이마무라의 영화였다면 분명 격정적이고 뭔가가 분출하는 듯한 순간이었을 장면조차도, 차분하고 고요하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두 번째로 칸 그랑프리를 받은 <우나기>에서도 이어진다. 아내의 불륜을 알고 살해한 남자는, 가석방된 뒤 뱀장어를 보며 마음을 달랜다. 그가 이발소를 운영하는 시골 마을은 처절하거나 격정적이지 않지만, 여전히 각자의 문제를 끌어안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본다면 70의 나이만큼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도 온화해지고 관대해진 것이다. <간장선생>(1998)은 치열한 2차대전 시기를 그리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세계를 관조한다. 간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의사 아카기는, 전쟁이건 미국이건 관심이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간의 병을 고치는 것뿐이다. 인종도, 국적도 의미가 없다. 원자폭탄도 또 다른 간장병일 뿐이다. 능청스러운 유머와 섹스를 통하여 일본의 군국주의를 통렬하게 비웃어주는 <간장선생>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노인이 되어서도 결코 관대해진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웃어넘길 수도 있을 만큼 여유로워진 것이다.

농부의 시선으로 여성과 대지를 찬미

실질적인 유작이라 할 수 있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2001)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세계관을 정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섹스를 하면 성기에서 물을 뿜어내고, 그것이 강으로 흘러들면 물고기들이 몰려든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허무맹랑하다. 그러나 성인의 우화처럼 너그러운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이마무라가 찬미하는 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남성들은 결국 여성에게 돌아가야 하고, 거기에서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된다. 생명의 근원은, 결국 여성인 것이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결코 이마무라의 걸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평생 그렸던 여성의 모습을, 의뭉스러운 판타지로 감싼 영화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노인이 아니었다면 결코 그릴 수 없는, 이 세계의 근원인 여성에 대한 원시적이면서도 순진무구한 찬사인 것이다.

정치와 미를 택한 오시마 나기사와는 달리, 이마무라 쇼헤이는 여성과 대지를 택했다. 그의 관찰이 냉혹해 보였을지 몰라도, 그것은 대지의 곡식을 바라보는 농부의 시선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장 정확하고,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결코 수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마무라는 더욱더 가까이에서, 그들의 가장 은밀한 섹스까지 냉정하게 관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론을 얻었다. 이마무라 쇼헤이는 인간을 예찬하고, 여성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영화인생을 마감했다. 그가 싸우는 방식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들어가, 그들의 생명력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국 이마무라 쇼헤이는 사무라이가 아니라 농부였다. 사무라이들이 어떤 영주를 위해 싸우건 말건, 농부에게 중요한 것은 씨를 뿌린 농작물을 끝까지 보살펴 결실을 맺는 것이다. 영주가 바뀌어도, 대지의 주인은 인간이고 여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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