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 액션노트 [2]
2006-06-15
글 : 이영진

병두는 황 회장을 괴롭히던 현직 검사를 살해하고, 그 일로 황 회장의 신임을 얻는다. 황 회장의 재개발 사업을 돕게 되고, 또 민호를 통해 첫사랑 현주(이보영)와도 재회하는 등 병두의 삶에 볕이 드는 것 같지만 그것도 잠시. 현주는 병두의 극악함에 질리고, 재개발 사업 또한 독사파의 방해로 순탄치 않다. 결국 병두는 어머니와 두 동생들을 위협하기까지 하는 독사파에 린치를 당한다.


“내 영화의 액션은 스타일리시한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다. 날것이 주는 쾌감은 있을지 몰라도 근사한 합으로 액션이 이뤄져 있지 않다.” 유하 감독은 액션보다 드라마를 중요시한다. 액션은 부차적이고 기능적인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어 <비열한 거리> 또한 ‘돋보이는’ 액션보다 ‘묻어나는’ 액션에 중점을 둔 영화다. 최선중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유하 감독의 액션 연출은 박노식, 장동휘 등이 출연한 1960, 70년대 ‘짠짠바라’(액션 스타들이 대결을 앞두고 맞서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던 음악에서 비롯된 용어)영화와 다르다. 단, 독사파에 잡혀서 끌려가던 병두가 반격을 시도하는 봉고차 장면은 예외다. “액션 하나에도 개연성을 따지는 편인데 이 장면은 영화적 서스펜스를 염두에 두고 어찌 보면 무용담 같은 액션처럼 연출했다.” 이는 관객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매번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가 나오는 액션이라면 단조롭지 않을까. 봉고차 안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병두가 싸움을 벌인다면 좀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유하 감독의 고민과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선 CG의 도움이 필요했다. <본 슈프리머시>나 <매트릭스>처럼 거대한 트레일러 위에서 찍을 순 없었고, 결국 제작진은 봉고차의 덮개와 옆구리를 ‘덴깡’(언제든지 떼어낼 수 있도록 개조)하고, 블루매트를 이용해서 달리는 봉고차 안에서의 격렬한 싸움을 찍어냈다. 촬영은 성인오락실 장면처럼 극의 순서와 상관없이 100회에 달하는 기나긴 촬영기간의 후반부에 이뤄졌는데, 유하 감독은 “먼저 찍다 배우들이 부상을 입을 경우 촬영이 미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며 “누군가 부상을 당해도 촬영 마지막날 당하는 게 서로를 돕는 것 아닌가(웃음)”라고 말한다.


독사파를 물리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병두. 그러나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되는 황 회장과의 비밀을 친구 민호에게 털어놓은 일로 인해 병두는 이내 위기의 수렁에 빠진다. 연인 현주를 만나러 서점에 갔다가 형사들에게 뒤쫓기는 병두. 그는 자신이 비열한 거리가 지목한 또 하나의 희생양에 불과하다는 엄연한 사실을 서서히 깨닫는다.


편집본을 수도 없이 돌려보는 동안 유하 감독은 서점의 추격전에 유난히 이끌렸다. 병두가 도주하고 형사가 추격하는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설정이었지만, 유하 감독은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넘는 조인성의 움직임이 다른 어떤 장면보다도 “깔끔했고, 또 맘에 들었다”. “인성이가 남의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을 하고 있구나. 움직임 하나하나가 체화됐구나 싶었다.” 애초 유하 감독이 조인성을 선택한 건 “액션을 잘 못할 것 같아서”였다. 관객도 액션을 못할 것 같은 배우가 정작 영화에서 뭔가를 해내면 더 환호할 것이라는 도박 같은 계산도 작용했다. “본인 말로는 태권도 4단이라고 했는데, 고작 노란띠 차본 기억밖에 없으니 실제로 2단 실력인지, 4단 실력인지 봐도 모를 일이고. 속는 셈 치고 캐스팅을 했는데 적응을 정말 잘 하더라.” 너무 호리호리해서 촬영 전에 “몸 좀 만들라”고 하면서 “스포츠맨이 되지 말고 싸움꾼이 되어야 하다”고 요구했는데, 서점 액션에서 조인성은 드디어 ‘싸움꾼’ 같은 몸놀림을 보여줬다. 유하 감독은 조인성의 탈바꿈을 <말죽거리 잔혹사> 때부터 함께한 신재명 무술감독의 공으로 돌린다. “다른 무술감독하고 해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순 없지만, 신재명 무술감독은 감독의 변덕스러운 요구에 언제나 성실하게 아이디어를 내준다. 사실 미리 짜놓은 합을 감독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뒤틀 경우 대안을 내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무엇보다 신 감독은 배우 조련에 능하다. 촬영 전부터 후까지 배우가 기분 상하지 않게 다독여가면서 결국 원하는 것을 만들어낸다. 인성이가 많이 업그레이드된 건 신 감독이 끊임없이 반복훈련을 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키가 커서, 너무 잘해서, “대역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다”는 조인성의 투박하지만 강한 발차기는 6월15일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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