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DVD]
[해외 타이틀] 숨막히게 신비한 롱테이크! <여행자>
2006-06-09
글 : ibuti

2005년 가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여행자>가 7분 긴 버전으로 재개봉되자 평론가들은 과거에 영화를 과소평가했다는 것과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의 의미가 깊어졌음을 인정해야 했다. 안토니오니의 많은 영화는 방황하는 서구인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여자 때문이건 아니면 진실 때문이건 그들은 내내 길을 걷다 종래에는 시작지점에 서서 빈손을 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자브리스키 포인트>와 <여행자>에 이르러 그 주제는 서구 문명의 퇴락으로까지 확대된다. <여행자>의 주인공 로크(잭 니콜슨)는 게릴라에 대한 취재를 나갔다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길을 잃는다(<여행자>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반대편에서 로렌스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호텔로 돌아와 이웃 방 남자가 죽은 걸 발견한 로크는 그의 이름 로벗슨으로 살기를 택한다. 반정부 해방집단에 무기를 제공하는 존재로 현실에 다시 개입한 그는 또 다른 여행자 ‘소녀’(마리아 슈나이더)를 만나게 되고, 현실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로크가 기자 시절에 인터뷰한 아프리카인은 “당신이 타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당신을 더 드러낼 뿐, 결코 타자를 더 잘 알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목민이 아닌 자가 유목민의 삶을 선택했으니, 로크의 방황과 정체성이 혼란을 일으키는 건 당연하다. 옛 존재에게 환멸을 느낀 그는 별 의미없이 선택한 새 삶에서도 공허한 자신의 모습을 재확인할 따름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그 숨막히게 신비한 롱테이크- 카메라가 방에서 창문을 뚫고 나갔다 360도 회전한 뒤 다시 방을 응시할 동안 한번도 화면이 끊기지 않는- 가 시작된다(니콜슨은 음성해설에서 ‘one shot’이란 말을 족히 일곱번 넘게 말하면서 호텔 구조를 이용한 장면의 비밀을 드디어 공개하는 것에 대해 안토니오니가 기분 나빠하지 않길 바란다). 이어 죽은 남자 앞에 선 슈나이더의 모습은 아찔한 데자뷰의 경험이다. 우연히 만난 남자의 죽음을 두고, 3년 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난 저 사람 이름도 몰라요”라고 말했던 그녀에게 이제 죽은 남자의 존재를 인지한다는(물론 그것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이지만) 대사가 주어진다. ‘사막과 황야에서 두번 죽는 남자 이야기’는 그렇게 끝난다. DVD는 부록으로 두개의 음성해설을 담고 있다. 영화의 판권자인 니콜슨은 <정사>의 원제목을 인용해 <여행자>가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최고의 ‘모험’이었다는 말로 시작해 안토니오니가 자신의 영웅임을 인정하며 끝맺는데, 두 시간 내내 흘러나오는 그의 감회어린 목소리 또한 스펙터클이요 모험이다. 작가와 기자의 음성해설은 다 듣진 못했으나 성기고 심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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