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지만 있는 듯, 괴물의 존재를 고려한 촬영
이와 동시에 호주의 특수효과업체 존 콕스팀에서는 애니매트로닉스(전자적으로 재현되는 로봇) 작업이 진행됐다. 애니매트로닉스는 <쥬라기 공원> 등에서 사용된 것으로, 크리처가 배우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등장할 때 CG가 아니라 실제 크기의 로봇을 등장시키는 것이다. <괴물>에서도 괴물의 입 부분이 애니매트로닉스로 만들어져, 괴물이 사람을 삼키거나 뱉을 때 등에 사용됐다. 한국에서도 괴물의 존재를 고려한 촬영이 진행됐다. 배우들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 있는 듯 연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수효과업체 퓨처비전은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 일으키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괴물이 물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드럼통을 정해진 각도로 빠뜨린다든가 하는 ‘프랙티컬 이펙트’ 작업이었다. 한편 한국의 CG업체 EON은 괴물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의 CG를 만들기도 했다.
시각적인 요소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괴물이 일으키는 실감나는 소리를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쿵쿵대면서 걸어가는 괴물의 발소리나 꼬리 움직이는 소리 등이 녹음업체 라이브톤에서 제작됐다. 또 다양한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미국에서 주문된 동물소리 샘플러가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괴물이 내는 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목소리 배우가 꼭 필요했다. “괴물이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는 대목들이 있는데, 이것은 효과음만으로는 불가능했다. <킹콩>에서 앤디 서키스가 직접 킹콩의 목소리를 녹음한 것과 똑같은 이치다.”(봉준호) 결국 괴물의 목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한 배우가 캐스팅됐다(그는 개봉 때까지 자신이 여기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감춰달라고 제작진에게 부탁했다). “그분 덕에 괴물의 미세한 호흡이나 내면까지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게 봉 감독의 말이다.
이렇게 완성된 <괴물> 속 괴물은 단지 무섭거나 증오해야 할 대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출현하는 극적 맥락 때문에 무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외양만을 놓고 본다면 이 괴물은 H. R. 기거가 창조한 <에이리언>의 외계 괴수처럼 잔인한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의도적으로 괴물의 무서운 면모는 적게 표현됐다. 장희철 디자이너는 “무섭게 보여야 할 장치들, 이를테면 익숙하지 않은 모양새에 뾰족한 이빨 같은 공식적인 클리셰는 배제했다. 한편으로는 너무 멋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디자인된 것과 관련해 봉준호 감독은 “탄생 자체가 불쌍한 놈이다. 사실 이 괴물에겐 죄가 없다. 힘들게 태어나서 나름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쳤던 것이니까”라고 설명한다. 대다수 괴수영화 속 괴물이 별 이유없이 해로운 존재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괴물> 속 괴물은 나름의 사연이 있으며, 여기에 따른 내면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적이며, 서울적인 괴물
괴물은 환경 재앙 속에서 탄생했다. 눈과 앞다리는 기형에 가깝다. 괴물의 창조자이자 어머니인 셈인 장희철 디자이너는 괴물의 내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생물들은 부모를 통해서든 유전자의 명령을 통해서든 어릴 때부터 특정한 학습을 한다. 그러나 이 괴물은 그런 유전자적 특성이 섞이거나 아예 없어지면서 학습이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부모없이 태어난 존재다.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은 다섯살쯤 되는데, 비정상적인 성장으로 몸집이 커졌지만 어린 시절에는 한강이란 험한 곳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겠나.”
이런저런 정황으로 미뤄볼 때, 괴물은 지극히 한국적인 존재다. 봉준호 감독은 “처음부터 괴물은 유럽 판타지물에 나오는 몬스터가 아니라 송강호와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은 한국적이고 서울적이며 리얼한 느낌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살인의 추억>에서 연쇄살인이라는 스릴러 장르적인 요소를 한국사회 속으로 녹여냈던 봉준호 감독답게, <괴물>에서 그는 괴물이라는 요소조차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로 결합시켜낸 것이다. 결국, ‘괴물의 탄생’은 영화 안에선 불행한 사건으로 묘사될지 몰라도, 한국 영화계 차원에서는 축복받을 일이 될 것이다.
케빈 래퍼티 비주얼 슈퍼바이저 이메일 인터뷰
"괴물은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위협적이다"
-어떻게 <괴물>에 참여하게 됐나.
=시나리오를 읽고 괴물의 디자인을 보자마자 이 영화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로선 <살인의 추억>이 내가 본 유일한 한국영화였는데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텔링 스타일이 너무 좋았다. 봉 감독이 샌프란시스코로 와서 미팅을 할 때는 특수효과가 많이 사용된 할리우드영화에 대한 그의 꼼꼼한 조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처음부터 스타일과 감성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괴물> 작업은 할리우드영화를 할 때와 달랐나.
=나에게 가장 큰 차이점은 촬영 단계다. <괴물> 스탭들은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강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배우들도 촬영이 없는데 현장에 오곤 했다. 또 현장에서 편집을 했는데, 빨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 미국에서도 현장 편집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지만 내겐 이번이 첫 경험이었다.-장희철이 디자인한 괴물의 외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괴물은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위협적이다. 괴물의 모든 특성이 너무 좋다. 예를 들면 5개로 이루어진 입이라든가. 대칭이 아닌 점도 좋고, 기형의 작은 다리도 맘에 든다.-괴물을 CG로 창조하면서 참조했던 동물이나 다른 영화 속 괴물이 있나.
=여러 가지를 참조했다. 과거 영화들과 실제 생물들에서 정보를 수집했다. <쥬라기 공원>과 <쥬라기 공원2>의 두발로 걷는 공룡, 특히 T-rex의 중량감과 부피를 참고로 했다. 그리고 <드래곤 하트>의 용 드라코를 보면서 큰 사이즈의 파충류의 피부에 빗방울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참고했다. <프레데터>와 <블레이드2>에서는 여러 개의 턱이 있는 입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도 유심히 봤다. 괴물이 수영하는 것에 참조하기 위해서는 고래의 헤엄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악어에서부터 원숭이까지 다양한 생물의 영상도 참조했다. 심지어 송어와 농어를 스튜디오에 가지고 와 불에 태우면서 물고기의 피부를 파악하기도 했다. 지나친 걱정은 안 해도 좋다. 물고기는 이미 죽어 있었고, 깨끗했고, 요리하려고 준비된 거니까. 단지 평범하지 않는 방법으로 요리했을 뿐이다.-<괴물> 속 괴물을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실제 같은 괴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게 굉장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꼬리에 세 가지의 다른 릭(rig: CG상의 뼈대에 해당하는 것)을 넣었는데, 하나는 꼬리를 이용한 움직임을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먹이를 움켜쥐는 것, 마지막으로는 걷고 달릴 때 밸런스를 잡아주는 모습을 위해서였다. 다섯겹의 입 또한 어려웠다.-봉준호 감독은 한국에서 디테일이 가장 치밀한 감독이라는 평을 듣는데, 까다롭지는 않았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그의 의견은 정말 최고였다. 나 또한 디테일한 부분을 잘 잡아낸다고 생각하는 축인데, 봉 감독님이 캐치하는 부분 중 상당량을 감지해내지 못했다. 봉 감독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단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