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기타노 다케시의 퓨전사무라이 활극, <자토이치>
2006-06-15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EBS 6월17일(토) 밤 11시

<자토이치>는 1962년부터 26번이나 만들어진 일본의 대표적인 사무라이영화다. 그토록 끊임없이 리메이크됐던 영화가 2003년 기타노 다케시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다. 맹인 검객 자토이치는 기타노가 연기했다. 자토이치가 맹인 검객이자 안마사이며 도박의 천재라는 기본 틀만 그대로 유지한 채 나머지는 모두 ‘다케시풍’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의 첫 사극 연출작임에도 그리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새로운 <자토이치>가 다케시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저 27번째 <자토이치>로 불리기에 아까운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세 무리의 나그네가 한 마을에 들어온다. 맹인 검객 자토이치와 떠돌이 검객 하토리(아사노 다다노부), 그리고 게이샤 남매. 그들은 마을에서 악행을 저지르며 군림하는 긴조 일당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들만의 슬픈 사연을 안은 이 세 무리의 나그네들은 우연한 기회에 마주치고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사실 줄거리만 보자면 매우 단순하다. 원한과 복수의 대서사라고 보기에도 미심쩍다. 이미 26번이나 만들어진 영화의 이야기가 얼마나 더 새롭게 나아갈 수 있겠는가. 기타노가 이 점을 몰랐을 리 없다. 그가 공을 들여 변화를 주고 싶었던 부분은 자신이 연기한 자토이치의 캐릭터와 액션신들, 그리고 사무라이영화 속 장르의 혼합이었던 듯싶다. 사무라이영화 특유의 일 대 다수의 칼싸움 장면들은 잔인하게 피가 튀기고 사지가 잘려나가는데도 불구하고 단순 명쾌한 리듬감을 준다. 물론 무게중심은 자토이치를 연기한 기타노에게 있다. 보이지 않으므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자답게 그의 계산된 몸짓은 정확하고 예리하지만 우아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매력은 시종일관 심각하고 끔찍한 피의 혈전 대신 코미디와 뮤지컬(몸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음악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이 혼용된 잡다한 에너지가 분출된다는 점에 있다. 기타노는 일본 전통 시대극의 결말이 인물들의 전통춤으로 해피엔딩을 알린다는 점에 착안하여, 전통춤 대신 집단 탭댄스로 마무리를 장식한다. 말하자면,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온갖 것들이 어우러져 팔팔 끓는 퓨전사무라이 활극에 가깝다.

그는 1997년 베니스에서 <하나비>로 최우수 작품상을 탄 이래 이 영화로 같은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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