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 루카스는 <포세이돈> 촬영 중 두번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물에서 헤엄쳐 탈출하는 장면을 찍다가 커트 러셀이 휘두른 손전등에 오른쪽 눈을 다쳐 16바늘을 꿰맨 일은 촬영 막바지에 생긴 사고에 비하면 애교에 가까웠다. 5m 높이에서 떨어진 조시 루카스는 오른쪽 엄지손가락의 근육과 인대가 찢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5시간의 수술, 6주간의 깁스, 그리고 재활 훈련까지. <포세이돈>이 촬영되는 동안 “모두들 다쳤고, 모두가 아팠다”는 조시 루카스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볼프강 페터슨 감독의 이름만 듣고 출연을 결정했다는 <포세이돈>에서 그는 프로 도박사 딜런을 연기했다. 딜런은 포세이돈호에서 무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탈출 시도를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인물. 덕분에 생명을 담보로 한 스턴트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스턴트를 직접 소화해야 하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루카스는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이건 지옥이야, 완전히 지옥이야!’라며 와이어에서 내려오면 페터슨 감독은 독일 악센트가 서린 말투로 ‘정말 재미있어!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야!’라고 응수했다.” 죽을 것 같으니까 제발 한번만 찍자는 장면에서조차 페터슨 감독은 “좋아 좋아. 이해해. 그러니까 한번만 더 찍자”며 카메라를 돌렸다. 배우의 액션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극한의 상황에 몰린 사람들의 리액션이 중요한 영화라는 감독의 말을 믿고 따르지 않았다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도전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블록버스터영화에서 주연급으로 캐스팅된 첫 번째 경험이었으니까.
아이들에게 강, 나뭇잎 같은 자연의 이름을 붙여주었던 리버 피닉스의 부모처럼, 인디언 보호구역에 산 적이 있으며 반핵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조시 루카스의 부모는 그에게 조슈아 루카스 이지 덴트 모러라는 특이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조시 루카스가 너무 쉽게(easy) 태어난 바람에 그를 받던 의사가 머리를 침대맡에 쿵 하고 찧었다(dent)는 데서 유래한 이 기이한 이름을 지어준 히피 행동주의자 부모는 그가 13살이 되기 전에 30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어린 조시 루카스는 새 학교에 가기 전날 밤이면 침대에 누워, 학교에 가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를 두고 고민에 빠지곤 했다. 그리고 이전 학교에서 그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소년들이 ‘되기로’ 결정했다.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았다뿐이지, 아역배우들처럼 연기하는 법을 배워나간 셈이다. 어린 시절이 너무 불안정했기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에서 편하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 했던 것은 물론이다. 나중에 그의 가족은 시애틀 외곽에 정착했지만 그는 여러 정체성을 부유하며 살아가는 배우가 되기 위해 대학도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TV에서 단역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조시 루카스는 40편가량의 TV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해왔다.
프로 도박사(<포세이돈>), 농구 코치(<글로리 로드>), 보안관(<미완의 삶>), 공군비행사(<스텔스>)…. 조시 루카스가 최근 네편의 영화에서 보여준 역할들은 남성적인 직업군에 집중되어 있다. 극히 낮게 깔리는 목소리, 젊었을 때의 폴 뉴먼을 연상시키는 약간 비딱한 미소,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근육질의 몸매는 그가 남성적인 배우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본 조건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남자다운 이미지만으로 할리우드에서 주연급 배우가 될 수는 없다.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주목받았던 <유 캔 카운트 온 미>,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한 <뷰티풀 마인드>, 리안의 블록버스터 <헐크>와 같은 굵직한 영화들이 그의 경력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의 이름은 출연자 크레딧의 4, 5번째에 머물렀을 뿐이다. 조시 루카스는, 주연으로 출연했던 로맨틱코미디 <스위트 알라바마>에서 들려준 미국 남부 사투리처럼 아주 느릿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2006년, 조시 루카스는 침몰하는 배에 탑승해 일생일대의 주목을 받는 역할을 마침내 거머쥐었다. 스캔들 기사에서조차 그보다 더 유명했던 여자친구들(헤더 그레이엄과 샐마 헤이엑) 다음으로 거명되어야 했던 단출했던 유명세는 이제 만개할 준비를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