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의 B딱하게 보기]
[B딱하게 보기] 재능의 차이를 탓할 수는 없지, <엑스맨3>
2006-06-30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전작들을 생각하지 않고 봤다면, <엑스맨: 최후의 전쟁>을 그런대로 재미있게 봤을 것 같다. 호쾌한 액션도 있었고, 새로운 엑스맨 ‘섀도우 캣’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하지만 속편은, 결국 전작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브라이언 싱어의 전작들이 워낙 뛰어났다. 브라이언 싱어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차별받고 따돌림받아야 하는 엑스맨의 고뇌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자비에는 단순한 평화주의자가 아니고, 매그니토 역시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자비에와 매그니토의 균형, 서로 싸우면서도 침투하여 하나의 궁극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곧 엑스맨의 분열된 자아였다. 브라이언 싱어는 <배트맨>의 팀 버튼, <스파이더 맨>의 샘 레이미와 함께 슈퍼히어로영화의 걸작을 창조한 감독이다.

<엑스맨…>에는 고뇌가 없다. 딱히 고뇌가 없다 해도, 크게 나무랄 일이 아닐 수는 있다. 세상에는 그런 영화들도 많이 만들어진다. 때로는 아주 심플한 권선징악이 기분좋을 수도 있고, 지나친 고뇌와 번민이 오히려 짜증나게 할 수도 있다. <엑스맨…>도 최악이거나, 크게 못 만든 영화는 아니다. 브렛 래트너도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선두 주자가 너무 잘 뛰었던 탓이다. 팀 버튼에 이어 <배트맨 포에버>와 <배트맨과 로빈>을 만든 조엘 슈마허의 선택처럼, 철학 대신 단순한 오락을 택한 것은 최선일 수도 있다. 적어도 흥행에서는 성공하는 길이니까. 어쨌거나 자신의 재능을 적절하게 판단한 것이니까. 지나치게 심각해서 지루해지는 것보다는, 뭔가 조금 비어 있어도 정신없이 지나가버리는 게 낫다. 그게 블록버스터의 법칙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데어데블>을 봤을 때, 그런대로 만족했다. 클라이맥스가 약하긴 했지만, 청각으로 영상을 재현하여 펼치는 액션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스파이더 맨>을 DVD로 다시 봐야 할 일이 생겼다. <스파이더 맨>을 보면서 감탄했고, <데어데블>에 대한 좋은 느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데어데블>은 그저 평범한 슈퍼히어로영화였다. 크게 나무랄 데는 없지만, 크게 칭찬할 것도 없는. 반면 <스파이더 맨>은 캐릭터의 ‘마음’이 있는 블록버스터였다. 역시, 재능의 차이란 것은, 존재했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자가 지루한 태작을 연속으로 만들거나, 범재가 자아도취에 빠져 허황한 졸작을 만드는 것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특히 자신을 천재라고 착각하는 범재는 도저히 두눈 뜨고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브렛 래트너는 과욕을 부리지 않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브렛 래트너는 즐거운 오락영화를 만드는 재능은 있지만, 그 이상은 없다. 그래도 <러시아워> 시리즈는 즐거웠고, <레드 드래곤>도 볼 만했다. 정말로 아쉽고, 전작의 명성을 갉아먹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엑스맨…>을 크게 탓할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다. 적어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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