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송윤아는 자기가 받게 될 질문들을 몇개 짐작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2004년 <페이스>에 이어 ‘두 번째 공포영화에 출연한 것’에 대한 질문이었다. 기자의 질문이 두 번째 공포물에 방점이 찍혔든, 단순히 신작의 출연 계기에 방점이 찍혔든 송윤아는 인터뷰의 서두를 조금 불편해했다. “공포물을 다시 해봐야겠다는 것 때문에 선택한 건 아니에요. 연기자로서 저는 그냥 또 한 작품을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는데 장르물이다보니 주변에서 공포영화를 강조하는 거 같아요.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아랑>이 스토리에 중점을 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한번에 읽히는 시나리오였고, 억지스럽지 않고 치밀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와 같은 평범한 대답, 본인의 말로는 “가식적인 인터뷰”가 얼마간 흐른 뒤 그는 돌연 태도를 바꾸어 솔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편집본을 봤는데, 내 연기가 기대에 못 미치더라고요.”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부끄러움. 그 때문에 힘들고 속상하고, 그래서 울기도 했지만 누가 알아주겠느냐고 그가 말을 이었다. 현장에서 연기의 어려움을 한창 느끼던 어느날 그는 동료 배우와 통화를 했다. 하소연을 했다. 이러이러해서 힘들고, 이러이러한 상황 때문에 나는 이것저것 놓치고 있다고. “그랬더니 그것까지도 내 탓이라는 거예요. 무슨 상황이 되었든, 그 무엇이 나를 연기하기 힘들게 가두든, 관객은 그런 내 사정까지 다 알아주고 내 연기를 봐주지는 않는다는 거죠. 어떤 것도 제 몫이라는 거죠.” <아랑>에서 송윤아와 공연한 이동욱은 <회전목마> <마이걸> 등 드라마 활동 경력만 가진 배우다. 후배의 첫 번째 영화 작업에 조언과 격려를 해줘야 할 입장이었다. 그같은 선배의 입장이 처음엔 뿌듯했다고 했다. “근데 너무 알아서 잘하더라고. (웃음) 영화 몇 작품 해본 것처럼. 도움 요청한 적도 없고요, 물어본 적도 없고요. 아, 다 나 같지 않구나, 했죠. (웃음)” 실은 든든한 백이 되어줄 겨를이 없었다. 스스로를 책임지고 간수하기도 바빴다.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 뒤늦게 후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나면 제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이에요. 내 연기가 너무 민망해서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일 고통스러운 시간이, 밤에 아무 생각없이 채널 돌리고 있는데 케이블에서 제가 나온 영화 하고 있을 때.” 그 창피한 심정이란! 소용없는 일이지만 그때마다 송윤아는 부디 자신 외에 아무도 이 영화를 보는 이가 없기만 바라곤 한다. “막말로 남들이 내 영화 정말 이상하다고 그래도 그 안에서 배우인 내가 잘 보이고 살아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배우는 어느 정도 만족을 해요.” 그 만족감은 흥행 성적하고도 상관없는 것이다. “좋은 작품 하고 싶고, 좋은 감독님과 일하고 싶어요. 나 자신도 부족한 게 너무 많아서 나를 끌어줄 만한 것들, 내 안에 있는 나도 모르는 무언가를 끌어내줄 동반자를 만나고 싶어요.”
송윤아의 솔직한 자책과 반성은 겸손을 가장한 제스처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그의 목표가 매우 현실적이다. 송윤아가 바라는 것은 배우가 얻을 수 있는 최고 존경의 경지라기보다 대중의 욕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는 방향에 가깝다. 그는 “단아한, 지적인, 청순한” 등 대중이 원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고, 영화만 고집하는 배우로 남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어떤 경지에 이른 배우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왜 없겠어요.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알죠. 그렇지만 그걸 이론적으로 안다고 해서 현실이 받쳐주는 것도 아니고 받쳐주지 않는 현실을 다 따라갈 수도 없어요. 그래서 나의 몫이 있다고 생각해요. <불후의 명작> 때도 했던 얘기인데 드라마나 영화 둘 중 하나만 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지지난해부턴가 영화에 대한 욕심이 커진 건 사실이지만 영화만 해나갈 자신은 없어요. 배우가 아닌 연예인으로서 저라는 아이만이 평가받을 수 있는 몫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송윤아는 올해 <사랑을 놓치다>와 <아랑>을 연달아 작업하며 쉬지 않고 지냈다. 현실과 욕심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해, 쉴 만한 마음의 여유도 찾지 못한 탓이었다. 인터뷰가 있던 날, 송윤아는 한국-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응원하고 나오느라 밤을 꼬박 샌 터였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해봤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고 했다. “잠이 안 오면 뭐든 다 꺼내서 정리하는 병이 있어요. 몇 시간씩 걸리고 나중에는 대책도 안 서고. 오늘 아침이 그랬어요. 그러다 나온 게 옛날에 쓴 일기장들이었어요. 데뷔했을 때 쓴 일기장을 봤는데, 나 너무 충격받았어. 내가 그렇게 무서운 아이인지 몰랐어. 악만 받쳐서…, 내용이 너무 슬펐어요. 그 어린 나이에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은 그런 글을 쓰지도 않고 쓸 수도 없는데. 사람은 항상 지금의 자기 상황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요즘 내가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일기장을 보고 나니까 그래도 그때보단 지금의 내가 행복하구나, 편안하게 사는구나 싶어, 위안이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