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성인 애니 <아치와 씨팍>의 조범진 감독
2006-07-03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사진 : 이종근 (한겨레 기자)
“무대책 출발 7년만에 끝장 한물간 느낌이 되레 색다름”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청문회에 나온 정치인이나 기업가의 발언이 아니다. 기획한지 7년 여 만에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28일 개봉)을 완성한 조범진 감독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여러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완성이 늦어진 이유를 열거하려면 돈문제부터 기술적 한계까지 줄줄이겠지만 무엇보다 “(작업에 참여한) 선수들도 적고, 해본 적도 없는 일에 뛰어들어보니 스스로 방법을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조 감독이 대학 후배(중앙대 서양화과)들과 함께 만든 제작사 제이(J)팀의 고정 인원은 5명. 교육용 씨디롬 타이틀을 제작하던 제이팀은 96년 재미삼아 그동안 작업했던 것들을 편집해 단편 애니메이션 <업 앤 다운 스토리>를 만들었고 이 작품이 주목을 받으면서 “조금 다른 느낌”의 애니메이션 만들기에 발동을 걸게 됐다.

“번번이 예정 스케줄이 무너지면서 완성 자체가 가장 힘든 일이 돼버린” 긴 시간동안 그들이 <업 앤 다운…>에 이어 <아치와 씨팍>에서 남다르게 시도했던 패러디는 가장 흔한 애니메이션 기법이 돼버렸고, <아치와 씨팍>에 드리워진 하위문화에 대한 열광도 상투어가 돼버렸다는 게 <아치와 씨팍>의 가장 큰 딜레마. “결과적으로 처음 기획에 비해 선도가 떨어진 게 아쉽지만 그래도 오히려 한물간 느낌의 이런 코드들이 새로 등장하는 게 오히려 색다른 맛을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다.

“특별한 기획의도나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나름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비틀어보고 싶었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아치와 씨팍>은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캐릭터의 소품까지 상식을 깨는 요소들로 가득차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에서는 아직 상상하기 힘든 18살 이상 관람가를 애초부터 겨냥한 것도 “총 쏘면 곱게(?) 죽는 액션 영화들은 마음에 안들어서” 라는 이유였다.

고생 끝에 별종 애니메이션을 완성시켰지만 그가 <아치와 씨팍>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영화적인 것도, 기술적인 것도 아니라 “무대책에서 시작해 끝을 보게 됐다”는 것이다. 다음 작품 계획을 묻자 뜻밖에도 “전혀 없고 애니메이션은 만들지 않겠다”고 잘라 말한다. “너무 오랫동안 해서 지겹기도 하고 나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데”라고 말하면서 엉뚱하게 “줄기세포를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다”는 농담을 두번이나 하는 걸 보니 이 ‘무대책’의 예술가에게 불가능한 도전이란 없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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