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7월8일 토요일 밤 11시
‘스파이널 탭’이라는 영국의 록밴드가 있다. 데이비드 허빈즈, 나이젤 튜프넬, 데릭 스몰즈와 드러머 믹 슈림튼, 키보더 빕 세비지 그리고 이들의 매니저 이안 페이스. 이들은 17장의 앨범을 내는 동안 밴드 이름을 바꾸고 죽은 드러머를 대신할 새 멤버를 영입하고 장르를 바꿔가면서 생존해왔다. 1980년대 초 이들의 미국 투어에 맞춰 감독 마티 디버기는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한다. 그러나 ‘스파이널 탭’, 물론 실존했던 밴드가 아니다.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라는 다큐멘터리 역시 진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마티 디버기는? 영화 속 마티 디버기를 연기한 사람은 <스탠 바이 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유명한 롭 라이너다.
마티 디버기가 밴드 멤버들의 일상과 공연실황을 따라가는 과정은 음악인들에 대한 여느 다큐멘터리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픽션인 만큼 멤버들에게 닥친 돌발 상황들은 ‘각본없는 드라마’보다 극적이고 난감해서 위대한 밴드의 코믹한 이면을 폭로(?)하기에 손색이 없다. 이를테면, 열광적인 공연 중에 번데기 모양의 세트에 갇혀버린 스몰즈나 기타 연주 도중 꺾인 허리를 일으켜 세우지 못하는 튜프넬이나 무대로 가는 길을 잃고 똑같은 자리에서 우왕좌왕하는 멤버들이나 진지한 공연 중에 갑자기 등장한 유치한 소품들 등에 웃음을 참기란 힘들다. 무엇보다 이 가짜 다큐멘터리에서 벌어지는 멤버들간의 관계를 비롯한 여러 사건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록밴드의 실제 일화에 대한 모방이자 풍자다. 밴드의 활동에 지나치게 간섭하여 매니저 페이스와 튜프넬이 밴드를 탈퇴하게끔 만드는 지니(허빈즈의 여자친구)와 허빈즈는 비틀스의 오노 요코와 존 레넌에 대한 일종의 비난이다. 드러머의 죽음을 새 멤버 영입으로 메우는 스파이널 탭의 모습은 존 본햄의 죽음을 끝으로 밴드를 해체한 레드 제플린을 연상시킨다. 게다가 앨범 커버에 대한 논란에 ‘블랙 앨범’으로 대응한 밴드의 무모한 시도는 비틀스의 ‘화이트 앨범’에 대한 패러디로 보인다.
허구의 밴드들한테서 실제의 사건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이 가짜 밴드의 열정적인 연주 또한 보는 이의 귀를 열고 심장을 움직이기에 부족하지 않다. 가짜가 진짜로 탄생하는 순간? 참고로, 이 영화의 백미, 엔딩 크레딧과 함께 진행되는 멤버들과의 인터뷰를 놓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