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니 이모를 찾아라! 최초의 한미 합작 애니매이션 <파이스토리>
2006-07-10
글 : 강병진

<파이스토리>는 바닷속 물고기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언뜻 <니모를 찾아서> <샤크> 등 애니메이션이 떠오르지만, <파이스토리>의 제작사는 디즈니-픽사도, 드림웍스도 아니다. <파이스토리>는 한국의 에펙스 디지털과 디지아트가 미국의 원더월드 LLC와 함께 공동제작한 최초의 한미 합작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연상시키는 국내 제목이나 원제 ‘Shark Bait’도 미국 애니메이션의 영향력 때문으로 보인다.

<파이스토리>의 이야기는 ‘상상플러스’식의 유머로 말하면 ‘니 이모를 찾아서’ 떠나는 모험담이다. 한국 사회로 치면 강남 8학군에 버금가는 보스턴 앞바다에서 자란 ‘파이’는 어느 날 온 가족과 함께 그물에 걸려버린다. 부모는 그물 밖으로 파이를 밀어내며 카리브해에 사는 이모를 찾아가라고 하지만, 이모를 찾아서 흘러간 적도의 캐리비안은 배짱 두둑한 그에게도 낯설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파이는 1급수 슈퍼모델 ‘코딜리아’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무법의 호통상어 ‘트로이’와 맞닥뜨린다. 트로이는 코딜리아에게 흑심을 품은 데다 캐리비안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요주의 인물. 급기야 파이는 호통상어에게 도전장을 들이미는데, 상어를 이길 수 있는 힘도, 기술도 없는 그는 결국 캐리비안의 은둔고수 ‘네리사’를 찾아가 상어를 이기는 전설의 무술 비법을 전수해 달라고 조르기에 이른다.

제작 초기단계부터 세계시장을 타깃으로 한 <파이스토리>는 흔히 ‘비주얼은 좋지만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아쉬운 점을 보완하고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를 담기 위해 <파이널 판타지>의 스토리보드 작가 존 폭스를 선임하여 스토리 기획과 집필을 함께했다. 베컴 스타일의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 어떤 물고기라도 슈퍼모델로 거듭나게 하는 해저 뷰티숍, 지느러미로 점괘를 보는 신비의 점성술사 물고기 등 기발한 상상력은 그런 노력으로 빚어진 것. 또 한국 크리에이터 손으로 구현된 완성도 높은 비주얼은 ‘해양생물사전’에 버금가는 <파이스토리>의 다양한 캐릭터에 매력을 더했다. 오렌지 빛보다 선명한 황새치 종인 파이와 블랙 & 블루피시 종인 파이의 이모 펄을 비롯해 산전수전 다 겪은 캐리비안의 돛새치 노익장 삼인방등 40여종에 이르는 물고기들이 캐리비안 해저를 채우고 있다. 캐릭터에 목소리를 덧입힌 출연진 또한 개성만점의 연예인들로 가득하다. 주인공 파이의 목소리를 맡은 인물은 꽃미남 그룹 ‘SS501'의 김형준. 또 다른 멤버 김현중은 캐리비안의 느끼100단 사진사 ‘맥스’로 등장하며 나머지 세명의 멤버도 모두 배역을 맡았다. 여기에 ‘돼지바’CF 이후 각종 러브콜이 쇄도하는 탤런트 임채무가 파이의 사부 네리사를, ‘바다의 왕자’ 박명수가 자신의 캐릭터와 똑 닮은 호통상어 트로이를 맡아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 박명수는 못 이룬 바다왕자의 꿈을 <파이스토리>에서 이루려는 듯 부지런히 애드리브를 남발(?)했다는 후문이다.

최초의 한미합작애니메이션

<파이스토리>는 심혈을 기울인 2년여간의 제작기간과 철저한 역할 분담을 통해 공동제작의 모범답안을 제시한 작품. 기존의 수동적인 OEM방식 합작과는 달리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작, 배급까지 모든 사안을 한미 제작사가 공동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진행해 큰 주목을 받았다. 애니메이션 기획 노하우가 풍부한 미국에서는 스토리 라인 기획과 음악, 음향 부문에 집중하고 크리에이티브와 제작 노하우가 뛰어난 한국에서는 스토리보드, 40여종이 넘는 캐릭터 개발을 전담했다. 특히 스토리 라인은 미국과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며 공동개발, 양국이 제작 전 과정의 공정을 책임지는 합리적인 협업이 이루어졌다. 세계화를 목표로 2003년 제작에 들어간 <파이스토리>는 탄탄한 구성을 통한 스크립트, 40여종에 이르는 개성만점 캐릭터, 해저공간의 생생한 구현으로 미국 제작진의 찬사를 받았으며, 해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의 3D/CGI 작품에 뒤지지 않는 완성도와 기술력을 보여주며 저력을 과시했다. <파이스토리>의 연출력을 인정받아 현재 <아웃백>의 감독을 맡은 이경호 감독은 “미국 현지의 실력있는 메이저 애니메이터들과의 작업을 통해 한국의 기술과 능력을 재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세계무대로 점차 뻗어나갈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바다의 왕자’ 박명수

“이 먹다 버린 치킨아!” 남들이 하면 그저 쌩뚱맞은 호통도 치킨 집 CEO 박명수가 하면 개그다. 박명수 특유의 재치만점 애드리브와 복식호흡법(?)으로 승화된 호통상어 ‘트로이’는 <파이스토리> 최고의 코믹살벌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녹음 전 자신이 맡을 캐릭터 ‘트로이’를 분석한 박명수는 트로이의 성격이 자신의 호통 컨셉과 흡사해 놀랐고, 덕분에 트로이에겐 그 자리에서 ‘호통상어’라는 애칭이 붙었다고 한다.

박명수가 유난히 바다와 인연이 깊은 것은 세상 모두가 아는 사실. 1999년 여름, 과감히 개그맨 활동을 중단하면서까지 1집 <Change>로 가수활동을 시작한 그는 ‘예견된 실패’ 이후 2집 <바다의 왕자>로 다시 한번 철옹성 같은 가요계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본업을 벗어난 대가인지(?) 결과는 참혹했다. 이후, 박명수가 등장하는 오락프로그램들은 잊을만 하면 <바다의 왕>’ 앨범 참패를 들먹이며 놀려댔을 정도. “내가 ‘바다의 왕자’라 상어 역을 맡는다기에 주저없이 선택했다”는 그의 말에서 지난 실패가 얼마나 뼈저린 아픔(?)을 느끼게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최고의 캐릭터는 역시 ‘닭’이 아닐까? 만약 <치킨런2>가 제작된다면 분명 닉 파크 감독도 박명수를 모른 척할 수 없을 것이다.

상어 틈에서 물고기가 살아남는 법

‘상어를 이기기 전에 나를 먼저 이겨라!‘ <파이스토리>에서 파이가 죽기 살기로 무술을 연마하는 과정은 <파이스토리>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다. 사랑하는 코딜리아를 지키고 캐리비안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호통상어 트로이에게 결투를 신청한 파이는 은둔 고수 네리사를 찾아가 삼고초려하면서까지 수제자가 된다. 하지만 6주 코스 ‘상어 퇴치’ 집중 레슨은 생각처럼 만만찮다. 360도 회전 발차기에서부터 물의 파워를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워터볼 만들기, 초고속 스피드와 강력한 돌파력을 자랑하는 물 회오리, 물보라 권법, 험난하기로 소문난 산호동굴과 전기해파리 빠져나가기 등 초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과정들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 하지만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호통상어도 무너뜨리지 못하는 법! 혹자는 물고기의 체형상 나올 수 있는 무술이 있을까 하겠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액션장면은 실제 무술에서 차용한 권법들로 구성되어 있어 흥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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